2010년 11월 3일
언니네 채널[넷] 특집 116호 ‘비-혼란’
작성자: 리파리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이 계절, 언니들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기분 좋은 서늘한 바람과 팥 내음 가득한 붕어빵, 한 알씩 까먹는 상큼한 귤들을 즐기기에 더 없이 좋은 이 계절, 길지 않기에 더욱 소중한 이 계절이 언니들의 삶에 여유롭고 넉넉한 풍성함으로 다가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번 언니네 채널넷 특집에서는 비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지난 2002년부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비혼 이슈는 언니네에서 핵심적으로 논의된 주제라고 할 수 있지요. 이번 비혼 특집은 ‘감자모임’, ‘비혼여성축제’ 등의 활동을 통해 비혼 이슈를 심도 있게 논의 해주신 ‘액션+공감팀(전신 액션나우팀)’과 편집팀의 합동작업으로 더욱 완성도 있는 특집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언니들, ‘비혼’은 대체 뭘 가리키는 단어일까요? 정체성을 표현하는 명명은 언제나 외부로부터 행해지기 마련입니다. 특정 명칭을 부여하는 것으로 타자성을 확고히 하는 동시에 자신의 주체됨을 확인하는 방식이지요. ‘블루 칼라’라는 명칭이 ‘화이트 칼라’의 의미를 더욱 확실하게 해주듯이, ‘코시안’이라는 단어에 내포된 정체성이 사실은 ‘코리안’의 정체성을 더욱 확실하게 해주듯이 말입니다. 이러한 명명의 방식으로 주류 혹은 중심으로부터 ‘외부’를 생성해내고 또한 구별지으려 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혐오에 기반한 행위이자 의식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자기 주체성을 자기 안에서 발견하고 발전시키지 못하는데서 오는 불안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지요.
그러하기에 이 세상에는 기혼 여성(결혼 한 여자)과 미혼 여성(앞으로 결혼 할 여자) 밖에 없다 믿는 세상을 향해 언니네에서는 끊임없이 비혼 여성의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 했지요. 그렇지만 역시 자기 언어구조에 없는 단어를 소화할 수 없는 거겠지요? 사람들은 여전히 비혼 여성을 ‘지 잘난 맛에 결혼을 우습게 알고 안하고 있지만 언젠간 큰 코 다칠 여자’로 이해하는 듯한 인상입니다. 어째서 여성의 정체성은 끊임없이 결혼을 통해 설명되는 걸까요? 결혼을 하든 안하든 이렇게 결혼제도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찬 세상에서는 그것이 여성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과, 그렇다고 해도 ‘어떤 여성’에게는 결혼이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양립불가능한 아이디어 인가요?
우리 스스로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명칭을 부여해도 외부의 인식체계에 없는 아이디어는 이렇듯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식으로 왜곡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명칭을 부여하여 정의 내렸던 비혼의 이미를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해보렵니다. 그동안 언니네에서 논의 되었던 비혼의 의미는(출처 페이지는 비혼자료집) 다음과 같습니다.
– 결혼이라는 법적+제도적+정신적(?) 울타리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 그렇게 살겠다는 것 (15)
– 결혼하지 않는 자 (43)
–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서 결혼하지 않은 상태임 (68)
–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선택한 것이 비혼 여성 (69)
– 국가가 공인하는 여 1인과 남 1인의 법적, 사실적 결합 상태가 아닌 모든 상태의 삶의 모습을 일컫는 말 (73)
– ‘결혼’의 문제가 아닌 ‘이성애자가 아닌 것’이라는 정체성을 표현하는 한 완곡한(?) 단어 (79)
언니들, 이러한 비혼에 관한 설명이 마음에 꼭 들어맞다고 생각하시나요? ‘Non, Je Ne Regrette Rien’의 선율이 인상적인 영화 인셉션에서는 ‘코끼리를 상상하지 마’ 라는 말을 들으면 코끼리만 생각하게 된다’라고 하는 얘기가 나오지요. 비혼 이슈에 관해서 논의할 때 빠지지 않고 얘기하게 되는 것이 결혼에 관한 얘기인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서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선택’ 한 것이 비혼이라는데 왜 결혼에 관한 얘기는 빼놓을 수 없는 걸까요? 우리도 모르게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는 비혼 담론을 구성할 때 되려 결혼에 관한 담롬을 풍성하게 해준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비혼에 관한 이슈가 8년 동안 쌓이면서 이제는,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기로 하는 것도 지루해진 건 아닐까요? 결혼하지 않은 상태 자체에 대한 고민보다 이제는, ‘내가 선택한 이 삶을 어떤 방식으로 멋들어지게 살 것인가’가 중요해진 것이 요즘 언니들의 고민이 아닐런지요? 우리는 이제 비혼 여성을 이렇게 불러보려고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만들어 놓은 여성의 삶이라는 시나리오를 따르지 않고, 그랬을 때 어떤 처벌이 기다리는지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을 견뎌내는 일은 지리멸렬하게 고단한 일일지라도 그런 삶을 감내해나가는 것을 내 정체성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그런 과정을 거친 삶이 결국에는 더 큰 가능성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만큼 현명한 여성, 즉 혼란스럽지 않은 여성(非混)으로 말입니다.
이런 취지에서 몽은 어머니가 생각하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삶과 자신이 생각하는 비혼의 간극을 짚어보는 글을 씁니다. 강위와 휴이는 서른, 비혼, 퀴어 라는 서로 비슷한 토대위에서 자신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요, 더지는 지난 비혼유랑단을 통해 만나 본 비혼 공동체인 비비와 비혼각몽을 소개하면서 적극적으로 비혼 공동체를 이뤄 사는 언니들의 삶을 조명해봤습니다. 강위는 소위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사회 공헌’을 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되는 비혼언니들의 삶이 정말로 사회에 공헌하는 바가 없는지 파헤쳐 봅니다. 마지막으로 노미는 ‘네 친구들 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기르는 재미에 빠져 살 때, 너 혼자 뭐 할래?’라는 걱정 어린 위협에 대한 유쾌한 답변을 해줍니다.
마냥 즐겁지만은 않겠찌만 어쨌거나 적극적으로 자기 삶을 고민하고 부딪히는 과정에 있는 언니들의 이야기. 자, 준비되셨으면 이제 시작합니다.
작성자: 몽
어렸을 때 본 드라마 속의 꽤나 전형적인 장면 중 한 가지는 이렇다. 순탄치 않은 가정환경 속에서 자신의 꿈을 이해 못 해주는 엄마를 야속해하며 살아가던 딸, 어느 날 “나는 죽어도 엄마처럼은 안살거야!” 바락바락 대들며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집을 뛰쳐나간다. (그리고 도시로 상경해 힘든 일을 전전하며 악착같이 돈을 번다.) 어렸을 때부터 나 역시 엄마의 인생을 지켜보며 그 대사를 속으로 몇 번이고 곱씹어 왔지만, 이게 웬걸. 엄마는 내가 미처 이 말을 내뱉기도 전에 선수를 쳤다. “너랑 엄마랑 같냐? 너는 엄마처럼 살면 안 되지!!!”
‘너는 절대로 엄마처럼은 살지마’
사실 ‘엄마처럼 살지 않는 삶’을 상상해보기란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아마도, 딸인 내가 자신과 같은 삶을 살 것이라고 상상해봤을 때 엄마가 느꼈을 암담함의 정도만큼 쉬웠으리라. 가족 이외에 ‘나 자신’이라는 것은 생각해볼 수도 없었던 삶, 그리고 그 안에서 남자에게 ‘여자’로서 사랑받고 인정받는 것이 그래도 행복한 인생이라고 ‘위로’해주는 사회, 남편과 자식의 뒷바라지를 얼마나 잘 했는지에 대한 사회의 인정이 자신의 삶을 평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척도인 인생. ‘그래, 너라도 후회 없이 살아야지’라는 엄마의 태도는 ‘행복한 가정/여성’상에 보내는 경험적이고 실천적인 냉소다. (엄마는 가끔씩 ‘제대로 된’ 남자와 결혼하면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너네 아빠 같은 사람만 아니면 돼’라는 전제가 실현 가능할거라고 스스로도 잘 믿지 않는 것 같다.)
재밌는 것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아야지’라는 말보다 “너는 나이 들어서도 수영도 하고 헬스 같은 것도 해서 관리하면서 살아”, “돈 벌어서 엄마 악어백 사준다고 한 약속 잊지마라.”라는 말을 더 많이 했던 우리 어무니처럼- ‘자식 키운 보람’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포기하거나 다르게 마음먹기 시작한 여자가 비단 우리 엄마 혼자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 (12.9%) 그렇지 않다 (87.1%)
“딸이 본인처럼 살기 바라는가?” (통계 : EZ서베이)
결혼 (31.8%) 성공 (68.2%)
“딸의 결혼과 성공 중 더 중요한 것은?” (통계 : EZ서베이)
– 딸을 둔 30대 이상 여성 233명을 대상으로 한 결혼가치관에 대한 설문조사 (출처 : 한국경제 기사) –
결혼이 아닌 다른 삶을 상상하고 기획하는 여성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건 그런 젊은 여성들이 그저 메뚜기 떼처럼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다) 했기 때문이 아니다.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여성들을 무대 위로 등장시키고‘뭐, 그렇게 살아도 나쁠 건 없겠지’라는 말로 뽐뿌질 해 주는 또 다른 여성들, 엄마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혼을 하네 안하네, 저출산이네, 가족의 붕괴네, 위기네 하는 호들갑에 맞장구쳐주기엔 나는 내 인생이 너무 소중했고, 엄마는 결혼생활이 너무 피곤했던 거다.
‘대신에 돈은 있어야지’
그. 런. 데.
이제 나를 이해하고 내 편이 됐다고 생각했던 엄마는 ‘수영’과 ‘헬스’와 ‘악어백’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가 왕자를 기다린다고 하면 환상임을 알면서도 ‘그래라’하며 두고 볼지언정, 지금 이대로 만족하면서 소박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면 ‘내가 그러라고 널 뼈 빠지게 가르쳤냐?!’ 분노했고 ‘언제까지 그렇게 살래?’라며 불안해했다. ‘왕자’를 기다리지 않는 것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지만, 온갖 노력과 헌신을 통해 키워놓은 (그래서 자신과 다르게 학벌도 능력도 있고 얼마든지 노력할 수 있을 만큼 젊고 앞날이 창창한) 딸이 ‘성공’을 기다리고 준비하지 않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IMF의 직격탄을 맞으며 지금까지 살아온 부모님의 세대 경험 속에서, 엄마는 결혼으로 ‘남자’를 옆에 붙여 놓아도 요즘 같은 세상에는 딸인 나에게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토대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현실을 감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가르쳐준 대로 살지 않는 여자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제재와 처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엄마이기도지만, 내 딸이 ‘결혼 안 한 여자’이기 때문에 받는 비난의 손가락질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강력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찌질한 여자’라서 처하게 되는 경제적 어려움과 차별이다.
카우프만은 <혼자 사는 여자, 백마 탄 왕자>라는 책에서 독신의 등장이 단순히 특정한 시대에 단절된 형태로 나타났다기보다, 광범위한 ‘사회의 개인화/개별화(individualization)’ 맥락에서 가능했고 이는 더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개인이 자신만의 삶을 스스로 꾸려나가려는 의지와 그에 따른 책임이 오랜 시간을 걸쳐 점점 더 강화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성의 자기규정을 가능하게 해 준 주체의 개별화가 어디에든 존재하는 신자유주의 기획과 만나게 되는 장면에서, 비혼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무엇이 요구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자기 의지, 자기 결정, 자기 책임, 자기 규정… 모든 것이 ‘나’로만 수렴되는 상황에서,‘찌질한’ 비혼생활을 긍정하며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건 어떻게 가능할까. 결혼에 대한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는 (것 처럼 보이는) 순간, 이 사회에서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내 앞에 놓여 있는 건 뭘까. 그건 결혼한 사람들보다 ‘더’ 잘 살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과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한 의미 있는 내 삶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고립감이다. 그래서 결국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자유로워지는 건 자본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그 자본의 획득여부는 온전히 나의 능력이나 노력 여하에 달린 것이니 어떻게 ‘골드미스’라는 임파서블 미션을 열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결혼을 하는 사람들보다도 ‘더 잘 사는 것’이 비혼을 선택한 이유나 목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열심히 일해서 더 여유롭게 즐기고 더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여자가 결혼을 안할거라면 돈이라도 있어야 한다, 성공해야 한다’라는 불안감을 만들어 낸다. 그 불안감에서 쿨하게 벗어날 수 있는 ‘독립적인’ 여성은 또 얼마나 될까.
나 만큼이나 나를 지켜보는 엄마 역시 불안한 요즘, 엄마는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비혼운동 하는 딸내미(그래요, 저예요…)를 전과 다르게 부쩍 종용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할 게 아니라면 돈이라도 많이 벌든가 둘 중에 하나는 해야겠다고. 엄마가 결혼노래 대신 수영‧헬스.악어백 노래를 불렀을 때 나는 오히려 기뻐했지만(돈? 돈은 그냥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벌면 되지. 결혼해서 사는 것보다야 훨씬 쉽잖아!) 실은 행복한 결혼도 수영‧헬스‧악어백도 내가 원하는 삶은 아니었다. 그리고 실현가능한 삶도 아니다.
다른 모델을 기획할 수 있는 힘,
며칠 전에도 비혼의 삶에 대한 인터뷰를 하면서 ‘비혼은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이 되는 여성들만 선택할 수 있는 삶의 형태가 아닌가요?’하는 질문을 받았다. (인터뷰를 하다보면 꼭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하지만 “저 같이 가난한 사람들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라고 묻는 사람은 아직 못봤다) 비혼을 주제로 숱한 인터뷰를 해왔고 이런 질문이 처음도 아니었지만, 최근의 이런저런 고민 때문인지 순간 당황했다.
어… 어? 그, 그러게요? 혼자 살아갈 능력이 없고 어느 정도 돈…이 없다면 힘들겠죠, 힘들…까? 아닌가?!
그러다 이내 곧 얼마 전에 발견한 ‘침대녀 퍼포먼스’라는 기사를 읽고 어처구니 없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침대녀가 뭐냐고? 친절하게 설명하자면 ‘자신의 외모와 스펙만 믿고 결혼을 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은 채 한가로이 침대에 누워 왕자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게으른 여성’ 정도 되겠다. (한 결혼정보회사에서 넘쳐나는 비혼과 만혼 때문에 나타나는 결혼 기피 현상을 너무 근심한 나머지 이런 세상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만들어낸 신조어라고… -_-)
“아니, 요즘 같은 세상에서 가만히 앉아서 남자를 기다릴 정도로 자신감 있는 스펙을 가지려면 얼마나 부지런해야 되는지 아냐고~”
“뭐야, 성공해야 된다고 열심히 일하고 스펙 쌓고 돈 벌어서 자기계발 해도 결국 결혼 안 하면 게으른 여자 딱지 붙이는구만. 어떻게 해도 실패한 인생이라는 거 아냐?!”
그래.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서 춤추라는 건지 알 수 없게 하는 것이야 말로 여자들의 상상과 관계맺음을 막는 가장 훌륭한 전략이지. 그래서 정상가족의 환상을 쫓는 것과 신자유주의 시대가 요구하는 ‘골드미스’라는 깊은 수렁에 빠지는 것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덜 나쁜지를 고민하는 건 너무나 허망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불안’이라는 단어로 비혼의 상황을 정의할 수 있는 힘을 흐트러뜨리는 것, 이런 외부의 협박이 불가능한 다른 모델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오랜 기간 고민하고 결정한 내 삶의 가치관을 인정해줄 사람이 없다는 고립된 위치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운명의 주인’ 혹은 ‘온전한 자립’에 대한 열망을 혼자서 간직하고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책임져야 한다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관계를 만들고 이어나가는 것- 거기에서 출발하는 것이 ‘우리’의 자유를 가능하게 하지 않을까.
정상가족 구성을 중심으로 고정된 생애발달주기와 성장과업에서 벗어난 삶을 상상한다는 건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려울 수밖에 없지만, 여전히 그 가능성에 기대면서 가치관을 공유해나가는 것이 우리의 힘이라는 옆 동료의 인터뷰 답변을 들으면서, 역시 잘 못 살고 있는 건 아니구나 생각한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관계’의 의미를 알 수 있는, 그래서 그 관계에 기꺼이 헌신할 수 있는 비혼으로.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참고자료] 쟝 클로드 카우프만, 성귀수 역, 2001, <혼자 사는 여자, 백마 탄 왕자>, 문학세계사.한국경제, ‘엄마들 속마음 “직장에서 잘 나가는게 결혼보다 낫다” 68.2%’, 2009년 11월 20일.
연합뉴스, ‘레드힐스, 침대녀 퍼포먼스’, 2010년 6월 5일.
MBC 뉴스데스크, ”결혼관’ 세대차이..엄마 따로, 딸 따로’, 2010년 7월 4일.
작성자: 휴이
해당 글은 아카이브 자료 공유 동의를 기다리는 있는 글로, 작성자의 허락을 구한 뒤 공개될 예정입니다.
혹시 언니네트워크의 연락을 받지 못하셨다면 unni@unninetwork.net 으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따로 사는 동거녀들
작성자: 더지
공동체_ 유토피아이거나 잃어버린 낙원
집을 뛰쳐나오고 싶은 심정. 마음 통하는 동반자를 만난 것만 같은 기분. 왁자지껄 어울리던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면 내뱉고 싶어지는 말. 행복한 미래를 예약해 놓은 것처럼 마음 들뜨게 만드는 그 약조. “우리 나중에 같이 살자! 매일 밤 술 먹고~”
하지만 그 날은 쉬이 오지 않았다. 각자의 운동과 생계를 찾아 흩어지고 거처를 옮기며 일 년에 한두 번 만나기도 어려워지는 세상사. 혈기왕성하고 가난한 젊은 여자들에게 같이 모여 살자던 ‘나중’이란 ‘나중에 한 번 만나자’만큼의 가벼운 시간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나에게 공동체는 비혼으로 – 페미니스트로서 행복하게 나이 들어 갈 수 있는 미래를 약속해주는 유토피아(가상의 이상세계)이기도 했다. 끊임없는 자기성장, 돌봄과 나눔, 곱게 늙었다는 징표로서의 주름, 흰 머리칼로 봄날의 외출을 꿈꾸게 하는 친구들과의 삶.
한 편으로는 질척함, 섭섭함, 배신과 자존심싸움으로 얼룩진 유혈극 속에서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기란 엄격한 자기 수행이 필요한 일처럼 요원해보였고, 40살이 되기 전에도 제 한 몸 건사치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밀려오면서 공동체란 ‘끝없는 도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결국, ‘공동체는 뭐..그냥 토끼같은 애인이랑 살고 말지-‘ 라는 체념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언니들을 좀 만나야겠어.
2010년 8월 말경, 언니네트워크의 활동가들은 5박6일짜리 배낭을 싸매고 유랑을 떠났다. 이른바 <비혼유랑단-비혼발자국으로 그리는 지도> 언니네트워크는 여성단체 활동가들의 ‘쉼’을 지원하는 한국여성재단의 공모사업에 선정되었고 ‘마냥 쉬러가도 괜찮다!’는 프로젝트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누굴 좀 만나야겠다’며 ‘전주’와 ‘제주’에 이정표를 세웠다.
전주와 제주에는 비혼공동체를 꾸리고 있는 언니들이 있다. 전주의 <비혼들의 비행 – 비비>, 제주의 <비혼, 각자의 꿈 – 비혼각몽>이 바로 그녀들이다.
내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다큐멘터리 <오이오감>에서, 하나 둘 같은 아파트 같은 동으로 이사해왔던 언니들, 김 세트가 생겼다며 각 집을 돌아다니며 김을 나눠주는 언니들의 모습이 선하다. ‘이런 것이 바로 공동체일까’라고 체감하는 듯 했던 그 언니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오이오감>, 2009, 여성영상집단 움 : 5개 지역과 5명의 감독이 제작한 옴니버스 영화. 이중 ‘비혼 비행’ 에피소드가 바로 전주의 비비 이야기이다.
2009년, 몇몇 활동가들이 제주영화제에 참석하면서 알게 된 <비혼각몽>의 존재. 그리고 언니네트워크 연대활동을 하면서 만나게 된 한 활동가가 말하기를 ‘저도 비혼각몽 멤버에요.’ 어? 근데 언니 지금 서울에서 뭐하고 계시는 거죠?
따로 사는 동거녀들, 시작은 달달하게
<비비>는 2003년 초 비혼여성들의 세미나 소모임으로 출발했다. 여성단체활동가, 공무원, 영어강사, 회사원 등 7명의 여성들이 모였다.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지’의 문제에서 시작되어 문제를 풀기위해 책을 찾고 같이 읽고 생각을 나누었다 한다. 한 달에 한 번의 정기모임으로 체계화되면서 한 번 모일 때 맛있는 거 먹고, 한 번 놀 때 재미있게 놀자는 심정으로 돈을 모았다. 이렇게 먹고 놀고 공부하는 새 생활공동체가 되었다. 여행도 가고 명절도 함께 보내고 소소한 기념일을 챙겨주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같은 아파트로 하나, 둘 모여들어 둥지를 틀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목적한 적은 없지만, 2006년부터는 스스로를 ‘공동체’로 부르기 시작했다 한다.
<비혼각몽>은 제주여민회 등 여성운동을 통해 만난 7, 8명의 비혼여성들로 시작하여, 2004년부터 모임을 만들었고 하나, 둘 꼬드겨(?!) 현재 40세 전후의 여성들 10여명이 몸담고 있다. 구성원들의 왕성한 활동력으로, 누군가는 서울 지역에서 여성주의 문화예술행사 기획자로, 혹은 이주여성인권운동가로, 또 누군가는 제주에서 천연염색을 연구하며 예술창작자로, 제주여민회 활동가로, 지역운동가로, 대학의 연구자로 각자의 삶을 꾸려왔다. 이렇게 서로 떨어져있는 탓에, 1년에 한 번 정도 제주에서 회동을 가지거나 함께 여행을 간다. 역시나 함께 조금씩 부은 돈으로 모임도 하고 여행도 가는 것이다. 또 늙어서 함께 살 마을을 꿈꾸며 목돈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녀들은 반드시 같은 집에 살지 않아도 같은 마을에서 살거나, 혹은 삶의 변화를 따라 서로 떨어져있다가 다시 모이기도 하면서 서로가 탄력성 좋은 끈에 엮어있는 듯 어디서든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공동체란 ‘나중에~’라는 시간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하나, 둘 끈을 엮어가며 이루어가는 것. ‘언니 지금 서울에서 뭐하고 계시는 거죠?’ 라는 의문은 주거공동체만을 공동체로 바라본 공동체 상상력’의 협소함에서 나온 것이리라.
두 모임의 평행이론, ‘계棨’
<비비>와 <비혼각몽> 두 모임 사이에 흐르는 평행이론은 바로 ‘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일정액의 곗돈을 붓고 있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 평소 이상의 치장(?)을 하며 외출 준비하는 엄마는 ‘친목계’를 간다고 말했다. 한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오계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개그송이 나왔다. 아줌마들끼리 머리뜯고 싸우는 파국의 중심에는 ‘계’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던 ‘계’란, 장르로 치자면 ‘블랙코미디’ 같았달까.
하지만 비혼공동체에서 ‘돈’이란 블랙코미디보다는 휴먼다큐에 가까웠다. 놀고 먹을 돈 : 이왕 계속 만날 우리들이라면 다음 만남, 다다음의 만남을 준비하자는 돈이다. 바람날 돈 : 함께 여행을 가자는 돈이다. 살림차릴 돈 : 현재, 혹은 미래에 함께 어울릴 공간을 만들자는 돈이다. 이 비혼공동체들에서 ‘계’란 각자의 쓰임 (예를 들어, 투자.자녀의 결혼자금.교육비 등)을 위한 ‘땡겨쓰기’와 ‘몰아주기’가 아니라 ‘함께 쓰기’가 목적인 것이다. 그것은 많고 적음, 풍족하고 가난함으로 따지는 종류의 돈이 아니라 ‘같이 쓰고 싶은 돈’ 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동행을 가능케 하는 기반이 된다. 역시 ‘계’는 여자들의 미래인가.
자기 성장을 돕는 친구들
우리가 <비비>를 방문했을 때, 그녀들은 정말 많이 변해있었다. 조금씩 모은 돈이 쌓여 공동의 자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상상했다. 2010년 초 아파트 근방의 건물 2층에 세를 들고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를 열었다는 것이다. 이 공간은 오전10시~오후10시까지 운영하면서 소정의 공간이용료 혹은 월회비 2만원을 받고 차를 마시며 책도 읽을 수 있는(언니네트워크의 책들도 발견!!) ‘친구 집 같은 북카페’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외에도 요가 강습, 영어 읽기, 작은마을 상영관, 소설 읽기 등의 프로그램/모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다큐멘터리 이후의 큰 변화에 적잖이 놀랐다. <비비>는 결혼 계획이 없고 자기 삶에 대한 고민을 가진 직장여성들의 격려와 지지모임으로 시작되었다 하는데, 분명 어떤 ‘비혼의 씨너지‘가 있었으리라.
<비비>의 막내 언니는 작년까지도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다는 생각에 꼭 결혼을 하리라 생각했단다. 하지만 언니들과 함께 지내다보니 이제는 ‘꼭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비비>의 또 다른 언니는 ‘더 일을 배우고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보이지 않았다’며 14년 동안 일한 직장을 스스로 그만두고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에 투신했다. 낮에 길을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새롭고 낯선 세상이었다며 낮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이 사람들 뭐지? 다 백수 아이야~?’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에 모두가 빵~터졌다. ‘내가 이 나이에’ 책을 뒤져가며 <비비>홈페이지를 만들었다는 말 속에 담긴 자랑과 성취감은 나만 받은 느낌이었을까. 상상도 안 해봤던 삶의 변화를 맞고, 그 낯설음을 견뎌낼 수 있었던 데에는 <비비>의 친구들의 지지와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알고보니 <비비>의 ‘비혼씨너지’란 단지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버텨낸다거나 마치 ‘비혼 핸디캡’을 극복하려는 투쟁적 에너지가 아니었다. 여성인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발견하고 변화하는 과정, 그것을 가능케하는 친구들과 신뢰, 바로 그것이랄까.
공동체의 원칙? ‘우리’의 경계는 확장된다.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는 지역의 여성들을 위한 공간이며 기혼, 비혼을 불문하고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비비중 누군가 결혼한다면…?’이라는 조심스러운 질문에 “우리 중 누군가 결혼한다면 그녀와 같이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과 변화에 맞춰 이 모임이 변하고 맞춰가게 되지 않겠냐”고 말한다. 언니들의 공동체는 관념적인 합의와 의지보다는 함께 생활을 나누어온 구체적인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태동한, 또 가능한 것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비혼원칙’ 따위는 너무도 추상적인 고민이었던 것이다. 또한 서로를 지지해주고픈 관계라면 그녀와 ‘가족’이라는 장소가 아닌 다른 네트워크와 공동체를 공유하는 것이 여전히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비혼각몽>의 구성원은 보다 다양하다. ‘이전에는 돈 묻어놔도 결혼하면 돈 못받고 퇴출했다~’고 했지만 이미 다양해진 구성원들의 삶과 함께 하면서 더 이상 ‘비혼이 무엇이냐’ 선긋고 대답하는 것이 재미없어졌다고 말한다. 파트너와 동거하고 있는 언니들도 있고, 이혼한 후 자신의 아이와 비혼각몽 친구와 함께 삶을 꾸리고 있는 언니도 있다. 그래서 비혼각몽의 미래는 이 파트너들과 아이들을 빼고서는 그려지지 않는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많고~), 늙은이도 있고 아이들도 있는 ‘마을’로 그 상상력이 뻗어있었던 것이다.
‘선물’로 받을 수 없는, 그러나 나눌 수 있는
언니들과 만나면서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갈등이 없었나요?”, “서로 잘 맞았나요?” 따위였다. 이런 나의 질문은 공동체를 꾸리는 것의 두려움, 바로 그것에서 나온 것일 게다. 모두의 대답은 같았다. “어떻게 갈등이 없겠어요. 하지만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달까.”
공동체란 잘 맞는 사람, 조금 더 쿨한 사람을 눈알을 굴리며 찾아다니는 것이 그 시작이 아니라 바로 내가 현재 가진 내 옆의 사람들과의 구체적인 관계로부터 출발할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삶에 대한 독립성과 책임감을 가지는 것, 사람에 대한 이해하고 잘 소통하는 것 등은 내가 어떻게 살 건 감당해야할 내 몫의 성숙에 관심을 가져야할 일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꽤나 귀찮은 일,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누군가와의 공동체를 꾸릴 때에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여자들이 자기 삶을 개척하는 과정 그 자체이다. 한 페미니스트 친구가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혼자 살 수 있으면 누구와도 함께 살 수 있다’고.
<비비>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충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사람들을 만나 공동체를 꾸려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활동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비비 2기> 격인 <비요나>. <비요나>와 세미나를 함께하면서 <비비>는 일종의 ‘공동체 멘토’가 된 것이다. 간혹 ‘이미 잘 만들어진 선물을 받고 싶은 마음으로 기존의 비혼공동체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공동체에 대한 나의 도둑심보를 떠올린다.
나가며…
20~30대의 비혼여성들 중 공동체에 관심이 있지만 막상 현실화하기를 주저하는 사람들과 함께 <비비>와 <비혼각몽>언니들과의 만남으로부터 얻은 지혜를 나누고 싶었다. 공동체란 당장 집을 사서 같이 살지 않아도 현재의 주어진 조건에 맞추어 상상해도 괜찮다는 것(또 바로 그러한 것), 또 공동체란 맘에 드는 사람을 찾아 꾸리는 미래적인 시도가 아니라 지금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이미 ‘공동체스러운 것’을 체득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며 그것이 공동체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 여자를 의존하도록 만드는 구조 속에서 내 몫의 성숙과 성장을 추구하는 것은 혼자 살든, 함께 살든 삶 그 자체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자에게 ‘계’란 블랙코미디 이상의 가능성이 있다는 믿음을 전도한다!
작성자: 강위
해당 글은 아카이브 자료 공유 동의를 기다리는 있는 글로, 작성자의 허락을 구한 뒤 공개될 예정입니다.
혹시 언니네트워크의 연락을 받지 못하셨다면 unni@unninetwork.net 으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비혼녀 노미의 아찔한 취미
작성자: 노미
사실, 이 모든 일을 대단한 결심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조금 더 용감했던 어느 하루,
그날만큼은 이불 속에서 꿈만 꾸기가 싫었고,
지금 당장 나는 자유로워질 거라 대책없이 기대했을 뿐이었다.
나, 대한민국 대표 비혼녀 (ㅋㅋ) 노미의 아찔한 취미생활은 어찌 생각해보면 의외로 뒤늦게, 참으로 게으르게, 그러다가 한 번 툭 건드렸더니 죽자고 일이 커져버린 그런 것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은 이미 가능한 일들이었다. 아주 살짝만 궤도를 바꿔보았을 뿐.
중국 아가씨 홍순이, 내게로 오다
그러니까 그 소박한 꿈이라는 것은 이랬다.
아, 강바람이 쐬고 싶구나 하면 그곳으로 훅 날아가고 싶음
밤 택시를 두려워하지 않고 한밤중에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음
정해진 코스가 아닌 길로도 다니고 싶음
움직이고 싶음
움직이고 싶음
움직이고 싶음!!!
한강에라도 나갈라치면 1시간을 걸을 것인가, 버스를 무려 두 번 갈아탈 것인가를 계산하다 주섬주섬 이불을 끌어올리고 마는 의지박약 / 죽자고 걸어봤자 근방 10km를 벗어나지 못하는 두발동물의 열등함 / 버스가 닿지 않는 맛집, 멋집은 언감생심 엄두도 못 내는 뚜벅이의 비천함 / 누군가의 운전대에 비굴하게 빌붙을 때의 아니꼬움 등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는 찌질함들이 나의 역마본성을 막아대니 화병이 날 지경이었다.
남성적 원칙과 정서로 이루어진 도로 위에서 홀로 또는 여성들과 달리는 것은 자의건 타의건 문화적 반란 이상의 무게를 갖는다. 순전히 위험에 대한 실존적 공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공포와 쾌감이 동시에 존재하기에 위험하지만, 그만큼 또 매력적인 것이리라. 그것은 비혼의 삶과도 비슷한데, 이미 한번 내어진 물길은 거스르기 힘들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내가 여성 라이더들과 접속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는지도.
여튼 제 발로 몸을 움직이기에 체력은 쓰레기 같고, 차는 없고(물론 살 돈도 없고, 양껏 다니기에는 대중교통이라는 것이 정해진 코스인데다가, 결정적으로 밤에는 다니질 않으니! 꺅꺅 나는 밤의 여자인데!!) 나는 인터넷 중고시장에서 맹렬한 클릭질 끝에 기어이 사고를 쳤다. 비가 조금 내리던 깜깜한 밤에 모셔온 나의 첫 그녀. 은밀하고 아찔한 취미생활에 불을 지펴준 그녀의 이름인즉슨, 나의 첫 스쿠터님 <홍순이> 되시겠다. 후훗.
무서워, 어려워, 힘들어
비너스라는 상품명을 가진 나의 홍순이는 화이트&블랙이 매치된 아담하고 귀여운 50cc 짜리 스쿠터였다. 꽃분홍색 시트로 튜닝돼 있어 홍순이란 이름을 붙였다. 내 짧은 다리도 매우 안정감 있게 안착할 수 있는 작은 클래식 스쿠터로 중고가격 30만원이었으니, 사실 엄청난 이동수단이라기보다 슬슬 동네나 돌아다니고, 출퇴근용으로나 사
용할 심산이었다.
그런데 모셔오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택트(배달용 오토바이)야 몇 번 몰아봤으니 운전은 자신 있었는데, 아뿔사 도로 위에서 몰아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캠퍼스에서만 타봤다는..ᄏᄏ) 스트롤(핸들에 달린 일종의 악셀레이터)을 땡기자 훅 날아가는데,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잡으니 내 몸이 막 고꾸라진다. 혼자 생쑈를 하고 있는데 좁은 골목길에 하필 자동차가 지나가겠다고 빵빵거리고.. 방향은 꺾어야겠는데 계속 같은 자리에서 앞뒤로 왔다갔다왔다갔다…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사자 눈빛같이 사납기만 하니, 그야말로 식은땀이 쭉 났다.
집으로 가는 내내 거의 인도에 찰싹 붙어 기어가다가 급기야는 인도 위로 막 올라서버렸다. 자동차들이 모두 나한테만 빵빵거리는 것 같고, 왠지 가다 설 것만 같고, 오토바이가 뒤집어질 것만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비는 오고, 어두운 밤이기까지 했다. 나중에 듣자니, 오토바이는 밤에 사러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일명 눈탱이(사기) 맞는다고… 내가 그딴 것을 어찌 알았겠나. 순수와 띨띨은 결국 문명세계에서 동일어라는 것은, 나중에서야 절절히 깨달았지만.
여자저차 홍순이를 모셔오긴 했는데, 덜덜 떨려서 좀처럼 운전대가 잡아지지 않았다. 30만원 그냥 날리는 거 아니냐며 괜한 후회를 하다 용기를 내 한두 번씩 타고 다니긴 했지만 아직 쌀쌀한 날씨를 탓하며 그냥 버스를 타기 일쑤였다. 버스에 안착하면 맨몸으로 도로에 서있지 않은 것이 안심이 되었다. 하필 큰 맘 먹고 동네 산책을 나선 날 주유구 열쇠구멍이 고장나는 바람에 기름 떨어진 오토바이를 질질 끌고, 쏟아진 함박눈에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돌아오자 정이 뚝 떨어질 지경이었다. 이래서 로망은 그냥 아름답게 가슴에 품는 것인가 싶었다. 오토바이라는 기계와 도로라는 무대는 내가 홀로 맞서기에 너무 무섭고, 어렵고, 힘든 과제였다. 적어도, 그녀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민폐로 시작된 여성전용 라이더 커뮤니티
그렇게 홍순이와의 관계가 싸늘해질 때쯤, 나는 돌파구를 위해 스승을 찾기로 결심했다. 어려운 것은 배우면 되고, 힘든 것은 단련하면 되는 것 아니겠나. 나 같은 여자들이 분명히 100명은 있을 거란 생각으로 검색에 돌입! 그런데 5분도 안 되어 여성전용 라이더 커뮤니티들이 걸려들었다. 우엇, 여성전용이라니!! 특히 ‘A’ 카페는 회원도 1,000명에 달하는 제법 큰 곳이었다. 일단 조용히 회원가입을 하고 동정을 살피는데, 나만 몰랐구나, 이런 신세계!! 이미 선지자 녀성들이 그득그득했던 것이었다. 그녀들은 이미 도로 위에 있었고, 심지어 배기량이 400, 600, 1000cc인 (내가 보기에는 공룡만한) 바이크를 핸들링하고 있었다. 우어어어어.. 쿠오오오오… 이딴 짐승 소리를 내며 감히 존재는 드러내지도 못 하고 침만 꼴깍거리고 있을 때쯤, 눈에 띄는 번개글이 올라왔다.
‘4월 5일 식목일, 스쿠터 번개’
그대가 불렀을 때 꽃이 되었다 했던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부름이었다.
그토록 기다린 첫 만남인데 가족모임이 겹쳐 대박 늦어버렸다. 고개를 조아리며 약속 장소에 도착한 순간에 그냥 얼어버렸다. 스쿠터는 우리 홍순이 같은 애들을 말하는 단어가 아니었음?? 거짓말 안 보태고 홍순이의 2배~3배는 됨직한 스쿠터 2대와 매뉴얼 바이크 2대, 그들을 보유한 평균 신장 170cm은 됨직한 장신의 언니들이 가죽 잠바와 가죽 부츠(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음)를 신고 모여 있다. 다들 바이크 선수같이 보였다. 그냥 모른 척 하고 뒤돌아 도망가고 싶었다. 아.. 어쩌자고 나는 이런 곳에(그러나 이미 입은 웃고 있고^-^;)…
언니들을 만나 알게 된 것은, 아무리 속도가 낮은 스쿠터라도 일단 사고가 나면 화상과 골절을 쉽게 입기 때문에 안전장비를 꼭 갖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웃도어 스포츠 장비들이 그러하듯 기능성인데다 가격 또한 만만치 않다는 것이 문제일 뿐. (홍순이는 언니들 헬멧 값에도 못 미친다는ᅲ) 이런 걸 알 리 없는 내가 중무장한 언니들 사이로 핑크색 장난감 같은 스쿠터를 몰며 하얀 감기마스크에 스키장갑 차림으로 룰루랄라 달려들어 왔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심지어 홍순이는 노쇠한데다 천식도 있어 소독약처럼 연기를 뽈뽈 풍기는, 최고속도 40km도 못 넘기는 조금 빠른 자전거 정도였으니 말이다. 언니들의 바이크는 적어도 120km 이상(‘적어도’이다. 어떤 바이크는 최고속도 250km에 달함)은 달려줘야 되는 아이들이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내가 등장할 때 그녀들의 얼굴이 잿빛으로 어두워졌던 것 같기도 하다. 그늘에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보냈다가는 어디 가서 사고나 낼 것 같았는지 일단 초짜를 에스코트하여 언니들이 앞뒤로 행렬을 지었다. 행렬 안에 있으니 도로를 혼자 달릴 때만큼 무섭지는 않았다. 혼자서는 꿈도 못 꾸었을 칼치기(차와 차 사이, 차와 보도블럭 사이 좁은 도로로 달리는 것)도 해보니 왠지 제법 실력이 느는 것 같아 대범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주행은 20분을 넘기지 못했다. 운전도 미숙한데 홍순이가 연신 연기를 뿜어대며 더 이상 못 가겠다고 난리가 난 것이다. 온 길을 어떻게 혼자 돌아가나 아득해지려는데 이 언니들, 의리 있다. 바이크를 수리 센터에 세워두고 탠덤(뒷자리에 태우는 것)을 해주시겠단다. 아.. 이 끝없는 민폐. 조금 미안해하며 제안을 넙죽 받아 J의 마제(그녀의 스쿠터 이름) 뒤에 올라탔다. 아이쿠 홍순이 재워두길 잘 했구나 싶은 것이, 막힌 도심을 지나자마자 이 언니들 엄청나게 속도를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쉴드(헬멧의 눈보호용 가림판)가 없는 반모를 쓰고 있던 나는 거의 눈을 못 뜰 지경이 되었다. 엄청난 진공청소기로 눈알을 청소하는 느낌?? 처음 만난 언니의 허리자락을 나도 모르게 덥석 안고 될 대로 되라 하고 몸을 맡기는 순간, 속도라는 표현으로 차마 부족한 육중한 기분이 느껴졌다. 여전히 중력의 보호를 받아 땅 위를 마찰하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불가사의한 공간이동을 해내고 있었다. 심장이 두구두구 하는데도 멈추지 않기를 바랐다. 달리고 있으면서도 달리고 싶어졌다. 그때 내가 한 생각은 ‘탠덤이 아닌 라이더로서 내가 앞자리에 앉고 싶다’는 것이었다.
용감한 언니들, 바이크를 타고 달리는
여성들이 간만에 몸을 움직여 보려거나 남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려하면 온갖 저항에 시달리게 마련 아닌가. 바이크를 타고 달리는 여성은 용감하고 멋지지만 그만큼 취약하기도 쉽다. 멋모르는 내게 친구들은 집에 있는 보호 장비들을 갖다 입히는가 하면, 도로 위의 규칙들을 귀가 따갑게 알려 주었다. 길을 읽는 법, 주행하는 법, 안전하게 멈추는 법, 사고 났을 때의 대처법 등등.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걱정과 잔소리를 하는 것은 내가 워낙 대책 없고 불안해 보여서이기도 하지만, 도로 위의 이방인인 여성 라이더가 위치한 현실이기도 하다. 마냥 오토바이가 좋아서 시작한 취미생활이지만, 그녀들 또한 산재한 공격과 위험들과 맨땅에 헤딩하듯 마주했을 것이다.
첫 만남 이후 나는 모든 관심사를 그 모임에 쏟아 붓기 시작했다. 매 주말마다 일산 호수공원이니, 잠실운동장이니, 행주산성이니 근방을 돌아다니며 바퀴를 굴리고 다녔다. 이제는 절친이 된 N, K, J 등 여성라이더 친구들에게 온갖 주행 비법(?)과 장비들을 전수받으면서 급기야 부산-울진-속초 투어에도 다녀오고 천안에도 다녀왔다. (물론 홍순이는 자기 사명을 다 하고 훈훈한 장기기증 소식을 남긴 후 현세를 떠났다. 나의 두 번째 그녀의 이름은 <엘리자베스>)
처음으로 속도계 바늘이 100을 넘긴 날, 1번 국도를 달리고 달려 부산에 도착한 날, 비를 뚫고 미시령을 넘은 날, 밤 열두 시가 넘어도 집에 돌아갈 일이 걱정되지 않았던 그 든든한 날들에, 내가 소망했던 그 작은 자유. 혼자였다면 결국 따뜻한 이불의 유혹에 져버리고 말았을 그 소망들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나는 너무나 행복했고 자신이 넘쳤다. 비록 자만하고 나대다가 사고라도 당할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를 듣긴 했지만.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
『여행(旅行) :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이 정의에 따르면 나의 일상은 여행과 다름없다. 출퇴근을 하러, 친구를 보러, 밤바람을 쐬러, 단풍놀이를 하러, 데이트를 하러 뽈뽈뽈 동네와 동네, 도시와 도시를 건너다니기 때문이다. 관광이 아닌 여행의 삶을 산다는 것. 관광버스와 가이드의 안내를 받기보다 내 발로, 내 손으로 시간과 공간을 기획하여 도로 위를 달리는 삶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행하는 여자는 위험한 여자다. 천국에 갈 착한 여자는 못 된다는 소리다. 빨간 구두를 신고 교회에 갔다가 발목이 잘린 소녀의 이야기처럼, 계율을 어기고 자기를 찾아 떠나는 여자는 기존의 도덕을 어지럽히는 존재로 취급된다. 자신의 의사에 따라 나를 이동시킬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권리처럼 보이지만 사실 대단한 권력이다. 역사적으로 이동의 자유는 권력의 문제와 분리되지 않았다.장애인 운동에서 이동권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 자체가 사회라는 무대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돈을 벌려면 나가야 하고, 사람을 만나려면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사회/정치적 생명을 포기하라는 선고나 다름없다.
자유롭게 이동하려면 신분적인 속박이 없어야 하고 탈 것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야 하며,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제약이 덜해야 한다. 이것은 가고 싶을 때 무작정 떠나는 무책임함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가고 싶을 때 협상해야 하는 조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누구와 어떤 내용으로 얼마만큼 협상해야 이동할 수 있는가? 예를 들어 <오늘 아침에 버스를 타고 직장에 9시까지 간다>는 간단해보이는 미션조차 내가 버스정류장에 가까운 (고로 전세값이 좀 더 높은) 집에 사느냐, 달동네에 사느냐 / 울며불며 안 떨어지려는 아이를 놀이방에 보내야 할 사람이냐, 아니냐 / 휠체어를 타거나 몸이 불편해서 저상버스 시간에 맞추어 나가야 되느냐, 마느냐 / 당장 버스비 1,000원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굉장히 힘겨운 투쟁일수도 있고, 무척 간단한 일과일 수도 있다. 협상해야 할 일이 많을수록 이동의 자유가 덜 보장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곳에 스스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은 더 많은 이동의 자유의 반증이기도 하다.
여성들이 자동차니, 오토바이니, 비행기니 하는 탈 것들을 자기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사용하게 되는 것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공포스러운 일일 것이다. “아니, 여자가 마음대로 움직이고 다니면, 애는 누가 보고, 밥은 누가 하고, 나는 누가 돌봐줘?” 결국 핵심은 버림받을까 두려운 감정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하물며 오토바이라는, 매우 터프하고 위험하고 어려워보이는, 여자가 직접 핸들링하기에 무척 부담스러워 보이는 기계는 더욱 그렇다. 포장된 도로는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선 문명의 상징이고, 도로를 달리는 오토바이는 속도를 컨트롤하고 위험을 타고 넘으며 문명 위를 질주하는, 그야말로 남성성의 꿈 그 자체가 아닌가. 그런데 그걸 가로채는 / 넘보는 여자들이라니. 웬만한 내공으로는 진심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을, 나도 이해한다.
(호르몬이 어떻고 뇌과학적 근거가 어떻고 하는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논박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을 따져서 도대체 뭐에 쓰나? 왜 그렇게 받아들이기 어려운지를 물어보는 것이 더 적절한 질문 아닐까.)
그러니까 장황한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우리는 달리고 있고, 아마도 가능한 한 주~욱 달려갈 거라는 것이다. 여자를 첫 손님으로 태우면 재수가 없다는 택시 업계의 전통이 견고하고, 배에 여자가 타면 물길이 노한다는 믿음이 신앙으로 섬겨지고 솥뚜껑 드라이버, 김여사 등 여자들을 도로 위에서 주눅들게 하는 놀림 문화가 팽배한 이곳에서, 나(우리)는 오토바이를 탄다.
천당으로 통하는 자동 궤도가 있다한들 어쩔 것인가.
나는 이미 다른 노선도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착한 여자들은 천당에 가라지, 나는 나쁜 여자라도 오토바이 타고 가고 싶은 데 갈 거다.
나의 멋들어진 친구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