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7일
언니네 채널[넷] 칼럼 비혼열전-2008 비혼여성축제 ‘비혼, 그 입술을 열어’
작성자: 몽
2008 비혼여성축제 ‘비혼, 그 입술을 열어요’
비혼여성축제를 떠올리면 어김없이 지독히도 추웠던 작년 3월의 축제가 제일 먼저 생각납니다. 비가 내리다가 강풍이 불었다가, 행사에 꼭 필요한 엠프는 오지 않고, 비혼선언을 하기 위해 무대에 올라간 참가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하얀 입김이 밥 짓는 시골집 굴뚝 연기처럼 선명했던 날. 지난해의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일까요^^; 올해 축제는 1년 중 가장 화사하다는 5월! 너도나도 결혼에 대한 환상과 낭만을 나누고 ‘행복한 (정상)가족’을 이야기하는 ‘가정의 달’의 끝자락에서, 다른 삶을 꿈꾸는 많은 언니들이 하나 둘 홍대로 모여들었지요. 벌써 한 달이 훌쩍 넘은 기억이지만 자, 이제부터 ‘비혼, 그 입술을 (다시) 열어요~’
축제의 시작은 ‘전시, 함께 그리는 비혼’과 함께
축제가 열리는 롤링홀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길을 따라 뿌려놓은 도토리처럼 여기저기 눈길을 끄는 전시문구들이 보이네요.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비혼여성들에게 힘을 주는 ‘센스’ 있는 한마디- “노처녀의 복 중에 가장 큰 복은 백지위임장이다. 일단 ‘그 미친 노처녀!’로 찍히고 나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부당한 낙인을 조롱하며, ‘그래, 날 미친 노처녀라고 부르라지!’ 낄낄대다 보면 어느새 공연장 안입니다.
허둥대며 준비하는 기획단들 사이로 일찍 도착해 <역사 속 비혼여성 찾기! 비혼열전> 전시를 구경하는 언니들도 보이구요. 언론은 통해서 본 <언론에 비친 비혼> 전시를 보고 있자니, 2000년도 언론에 ‘비혼’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하고부터 중요한 사회적 집단으로 가시화되고 있는 지금까지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네요. 2009년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어떤 사건들이 기사화가 될까요? 우선은 “내달부터 미혼 대신 비혼으로 표기 바꿔…”가 눈에 띄지만,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비혼여성연대 발의한 이명박 탄해 경의안 국회비준…”에 마음의 표를 던져봅니다.
전시를 보다보면 비혼여성들의 역사를 ‘발견’해내고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비혼여성인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돼요. 패트리셔 J. 윌리엄즈는 이렇게 말했다죠. “기록 없이 존재한다는 것은 너무 지속되기 힘들고, 쉽게 역사 밖으로 떼어져나가고, 내 과거만이 아니라 미래까지 다시 쓰려는 사람들의 손에 너무도 위험스럽게 놀아날 수 있다”고. 조용히 마음속으로 ‘그 때 그 언니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곧 상영될 영화를 기다립니다.
비혼 영상제_우리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사회자인 난새님과 해송님의 외침을 시작으로 드디어 축제가 시작되었네요. 가장 두근두근 하며 기다렸던 첫 번째 순서는 바로 비혼영상제! 더 이상 남성감독들의 영화에 등장하는 ‘독신여성’, ‘골드미스’와 같은 이미지로 덧씌워진 여성들을 보며 빈정상하지 않아도 되는 역사적인 순간인거죠. 우리의 입으로 비혼의 삶과 일상을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 그 첫 번째 작업이 영상으로 탄생하는 순간이요.
그런데 (보신 분들) 승지 감독의 다큐멘터리 <비혼프로젝트>에 등장하는 여자들이요, 어디서 많이 본 여자들 같지 않아요? 탱고를 추며 자유를 느끼는 여성, 동거하는 여자들,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입되지 않은 채로 함께 살아가는 가족…. 아주 가까이에, 그것도 내 옆에 있는 것 같은 익숙한 모습들이예요. 어떻게 하면 혼자서 잘 살 수 있을지를 탈모를 걱정하면서까지 고민하기도 하지만 씩씩함만은 잃지 않았다는 듯 웃고 있는 언니들이 생각나기도 하구요.
게다가 레즈비언 커플, 싱글맘을 계획하는 비혼여성, 자신만의 독립을 꿈꾸는 비혼여성이 등장하는 영화! 언니들의 모습이 마치 고양이처럼 느껴진다는 풍경 감독의 <고양이들>이 하얀 화면 가득 비춰질 때는, 어두운 그 공간 안에서 울리는 언니들의 웃음소리, 차분한 숨소리, 가끔 작게 코 훌쩍이는 소리까지도 생생했어요.
비혼여성축제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이 두 편의 영상을 볼 수 있는 날이, 곧 오겠죠? (그러니 못보신 분들 너무 아쉬워 마시길-)
비혼 퍼포먼스_’우쥬 플리즈 비혼할래~?’
영화제가 끝나고, 결혼에 대해 떠드는 모두에게 큰 소리고 ‘우쥬 플리즈 닥쳐줄래~?’를 외치는 비혼 UCC로 새로운 순서가 시작되네요. 축제 전부터 아는 모든 비혼여성들에게 설문지를 뿌려 얻어낸 <비혼에 관한 예측불허 앙케이트> 발표. 하지만 결과는 완전 예측가능 앙케이트라니! ‘비혼으로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사람’으로는 친구(47%), ‘비혼으로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기술’로는 사교술(29%)이 각각 1위를 차지해, 모두들 ‘역시 비혼에게는 친구만한 것이 없다’는 경험적 지혜에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었네요.
축제의 부제이기도 한 ‘우쥬 플리즈 비혼할래~?’는 바로 그 소중한 존재들과 함께 비혼으로 지지하며 살아가고픈 바램을 담은 것이랍니다. 지난 축제가 ‘비혼, 꽃이 피었습니다’를 제목으로 비혼여성이 스스로 주체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면, 올해 비혼축제는 <비혼 프로포즈>를 통해서 함께 비혼으로 살아가고픈 소중한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함께 하고 싶음을 드러내는데 초점을 둔 것이죠. 프로포즈를 하는 개인들은 친구들, 여동생, 애인, 선배언니, 만나본 적도 없고 김연아양에게까지도 손을 내밀었어요.(참… 그 분들이 손을 잡아줄지는 의문이지만^.~) 더욱이 지난 비혼축제에서 비혼선언을 했던 분들이 1년이 지난 후에 다시 무대에 올라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함께하자’ 말해주었을 때, 다시금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비혼음악제_온 몸으로 비혼을 노래하다!
마지막 순서는 바로 열 마디의 말 보다 한 소절의 노래, 조요한 몸의 움직임들이 더 마음에 깊숙이 와 닿는 사람들의 무대예요. 우는 듯 웃는 듯, 위로하는 듯 담담한 듯 노래하는 시와님의 목소리. 무지개-(무지개-) 하나가 되는 두 목소리로 비혼여성축제에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를 불러준 말없는 라디오. 정말 온 몸으로 여성들끼리의 끈적~한 유대를 표현한 스윙시스터즈. 시원하고 신나게 마지막 무대를 채워준 멋진 밴드 제니스 트레일까지. 비혼으로 살아가는 삶이 두렵고 외롭기도 하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언니들에게 보내는 축하와 지지의 무대들을 보면서, 내가 비혼이고 페미니스트인 것이 새삼스레 뿌듯했어요.
자, 이렇게 길고 긴 2008 비혼여성축제가 끝이 나네요. 작년, 올해의 축제를 지켜보면서 다음 해에는 또 어떤 비혼축제가 만들어질까 생각해요. 어쨌거나 그때에도 나는, 우리는 여전히 비혼으로 살아가고 있을테고, 더 많은 비혼인 언니들을 만날 수 있겠죠. 비혼임을 말하고 함께 비혼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이, 혼자서 살아간다는 의미로서 뿐만 아니라 새롭게 다양한 관계들을 재설정하고 다양한 형태의 삶을 지지하고 지향함을 의미하듯이, 더 많은 비혼언니들을 만나고 싶어요. 그것이 매년 비혼축제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이유랍니다.
마지막은 프로프즈로 마무리할까요?
우리는 싫어하는 게 많지. 마초 대하는 거. 재미없는 거. 평범한 거. 남들처럼 사는 거. 싫어하는 걸 멀리하며 살고, 또 그것에 자부심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제 당신이 거울 뒤에 숨겨놓은 소주병을 보았네 이 사람아. 어떻게든 완벽하지 않도록 만들어진 사람의 삶, 수많은 불안과 가능성을 가진 우리의 삶을 즐기고 만져가며 함께 살아가자. 너희들에게 이렇게 프로포즈 할게.
우리 같이 비혼할래? 대답은 내년 비혼축제 때 듣겠다. -<비혼 프로포즈> 中 더지님의 프로포즈-
내년에도 우리 함께 비혼국수 먹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