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미더뭐니? – 항의에 항의하다
난새(언니네트워크 운영지기)
자,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Mnet의 래퍼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Show Me The Money 4’에 출연한 한 출연자(정확히는 ‘위너라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인 송민호’)가 예전에 자신은 그저 돼지(왜 이 표현은 문제를 삼지 않는지도 의문이다. 만국의 비만인들이여! 궐기하라!)였지만, 알고 보니 복권이었고, 이렇게나 멋진 놈이 되었다. 그러니 나한테 꽂힌 여자들은 다 내 앞에서 다리를 벌려라. 뭐 이런 랩을 한 거다.
문제의 가사는 정확히 이렇다.
MINO 딸내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
그리고 일주일 뒤,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서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내가 저 가사보다 더 ‘문제적’이라고 생각하는 항의 성명의 전문은 이렇다.
[table “” not found /]나는 두괄식 인간이니까, 결론부터 뱉고 보겠다. 저 래퍼는 어쩌면 여성에 대한 혐오성 발언을 한 것이고,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명백히 여성의 섹스에 대한 혐오적 성명을 낸 것이다.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의 산부인과 의사 4천명을 거명하며, 저런 성명이 나왔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진짜 자신이 알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런 상상을 해보자. 저 래퍼가 ‘나는 이렇게나 멋진 놈이 되었다. 그러니 나한테 꽂힌 여자들은 육상선수처럼 다리를 크게 벌려 달려와라’와 같은 랩을 했다면, 과연 대한육상경기연맹에서 육상 선수의 명예를 훼손하고, 스포츠 정신을 폄하한다고 항의 성명을 냈을까? 대답이 ‘노’라면, 문제는 여성이 다리를 벌리는 행위가 무엇을 위한 것이냐에 따라 어떤 종류의 관습적 판단이 투영된다는 것일 테다.
몇몇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출산을 위해서는 섹스를 하는 행위가 필연적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여성은 남성 앞에서 다리를 벌려야 한다. (뭐 다들 알겠지만, 굳이 앞이 아니어도 되고, 다리를 벌리지 않아도 섹스는 가능하다. 그리고 여성의 섹스에 반드시 남성이 필요하지도 않다. 하지만 이 성명이 그런 파격적인 성애장면을 염두에 두고 ‘남자 앞에서 다리나 벌리는’ 행위를 연상시키는 가사가 모욕적이고, 명예를 훼손하고, 폄하했다고 운운한 것은 아닐테니, 그 부분은 차치하자.) 그런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의 항의 성명은 ‘새 생명들을 건강하게 출산할 수 있게 돕는 곳’과 ‘남성들 앞에서 다리나 벌리는 곳’을 대립시키고, 감히 두 가지의 엄연히 다른 다리 벌리기를 유사한 행위로 치부한 가사에 분노한다. 이런 분노는 출산을 위한 여성의 다리 벌리기는 신성하고, 아름다운 것이지만, 섹스를 위한 여성의 다리 벌리기는 더럽고, 추잡한 것으로 간주하기에 가능하다. 그러니 어떻게 되묻지 않을 수 있을까. ‘젊은 여성들이 산부인과 방문에 대해 색안경을 쓰고 보는 사회적 인식’을 지금 누가 조장하고 있는지. 산부인과가 여성들의 성생활과 성행위에 대한 사회적 금기와 관습을 깨부수려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더욱 단단히 동여매려 하고 있으니, 10대 청소년들이 ‘잘못된 성적 가치관’을 가지고, 산부인과에 대해 ‘오해’할 수밖에.
물론 저 가사에 대해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분노했다는 걸 안다. ‘365일 24시간 불철주야’로 ‘여성들의 건강과 21세기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새 생명들의 건강을 위해’ 일하시는 대한민국 산부인과 의사들조차 여성이 다리를 벌리는 행위에 대해 저 정도의 인식 수준을 가지고 있으니, 저 래퍼 역시 최대 그 정도의 개념에서 가사를 지어 부른 게 아닐까 하는 혐의를 충분히 받을 만하다. 더군다나 누군가를 좋아하는 이유와 방식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나(남성 연예인)를 좋아하는 너(여성 팬들)는 기꺼이 내 앞에서 다리를 벌려야 한다는 명령에는 그 래퍼의 팬들 역시 분노해야 한다. 설령 실제로 그와의 섹스를 구걸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일지라도 말이다. 여기서 제니스 조플린 언니의 말을 곱씹어 보자. Don’t compromise yourself. You’re all you’ve got. (스스로를 타협하지 말라. 당신은 당신이 가진 전부다.)
참.. 내가 진짜 궁금한 건, 연예인 한명의 치기 어린 랩 한 줄에 분노하던 사람들이 왜 4천명의 산부인과 의사를 등에 업은 조직의 언어도단에는 분노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여혐’이라는 명명과 그에 대한 대응이 여혐을 뿌리 뽑기 위한 과정이고, 진정 원하는 것이 여혐 없는 세상이라면, 무엇을 향해 분노해야 여혐이 힘을 잃게 되는지, 누구를 향해 싸워야 여혐이 사라질 가능성이 커지는지 정말 열심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서로의 힘을 모아야 한다. 여혐은 나보다, 당신보다 훨씬 더 오래 이 땅을 살아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