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6일
<엔젤스 인 아메리카 >
참석 : 로터스, 아니, 칼로, 케이, 허원 (기록: 아니)
토니 쿠쉬너의 장편 희곡 <미국의 천사들>을 장면 삭제 없이 그대로 영상으로 옮긴 4부작 드라마이다. 1980년대 중반 뉴욕을 배경으로, 에이즈에 감염된 프라이어와 루이스 게이커플, 몰몬교 부부로 약물에 중독된 아내 하퍼와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괴로워하는 남편 조, 극우보수주의자이며 동성애를 증오했으나 에이즈에 걸린 변호사, 이 세 이야기가 축을 이루며 교차되는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모임을 준비하며 연달아 4편을 본 우리의 구성원들은, 의미와 위트가 적절히 안배된 대사에 처음부터 끝까지 재밌었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초반의 지루함을 토로했다. 극중 배경인 80년대 중반 미국의 상황이나 몰몬교, 유대교 등의 생소한 종교들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고 연극 대본인 원작을 영상이라는 매체에 그대로 옮겨온 탓도 있을 것이다. 화면으로 담기에는 내용의 상당한 넘침이 있고, 카메라 샷은 단조로운 편이다. 무대로 봤더라면 영상보다 더욱 재미있게 봤을 것 같다는 기대가…(공연해주새오..)
하지만 이 초반을 무사히 본 자들에겐 크나큰 영광이 있는데, 극은 뒤로 갈수록 환상과 꿈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폭발적인 재미를 준다. 고통받는 인물들에게 환각처럼 나타나는 꿈과 현실의 뒤섞임, 환상, 천사의 강림, 예언자의 등장 등 현실과 대립되는 장치들을 이용해 그들이 자기 혐오와 고통을 서서히 극복해나가고 스스로를 인정해가는 모습을 그린다. 구조적으로 갈등관계에 놓인 인물들이 환상을 공유하면서 친구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현실에서 만나지 않는 인물들이 환상속에서는 만나기도 한다.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벌어지지만, 이를 통해 극은 끊임없이 ‘연대’를 은유하고 그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자연스럽게 에이즈에서 연대란 무엇일까ㅡ 라는 질문으로 넘어갔다. 성소수자는 연대가 없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이다. 에이즈에 걸린 성소수자는 더더욱 절실하다. 에이즈 초기, 병에 대해 무지했던 시절에는 오히려 레즈비언들이 환자인 게이들과 연대해 그들을 간호해 주었다고 한다. 또한 80년대 중반, 미국의 월가에서는 에이즈 환자들의 시위가 일어났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보통사람들도 함께 연대했던 사회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현재의 열린 정서를 가지게 된 게 아닐까. 극은 에이즈에 걸린 성소수자라는 직접적으로 구체적인 문제를 얘기함과 동시에 우리네 인생에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에 관해 어필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간, 이 공간은 이때보다 좀 나아졌나? 진보했나? (연대하는 세상인가..?)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은 과연 나아질 수 있는가에 대해 회의감이 느껴진다는 의견이 있었다. 시간이 세상의 질병과도 같이 느껴지며 시시각각 그 질병의 경과를 보는 것 같다, 다시 태어날까봐 못 죽겠다, 이미 업을 많이 쌓아서 망했다는 의견 등이 있었는데, 이 때 구성원들이 많이 힘들었나보다… 똥을 피하는 인간인지, 먹는지, 혹은 싸는 인간인지 묻는 시간엔 모두 똥을 먹는 타입이라 고백했으니… 세상살이가 더욱 힘들었던 것 같다. 앞으로 똥을 잘 피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고 끝을 맺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노오오력은 참 어려운 것이니 <엔젤스 인 아메리카>의 키워드인 ‘연대’를 튼튼히 하여 똥 싸는 인간에게 아무데서나 싸면 같이 손가락질 해주고 화장실에 가서 싸라 외치는 편이 꽤 현명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