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종주 이후 결성된 모임인만큼 한반도에서 세번째로 높은 지리산에 대한 트레킹 멤버들의 리스펙트는 참으로 남다릅니다.
5월이면 남원 일대의 지리산 주변은 온통 붉은빛 철쭉으로 뒤덮힙니다. 아마도 제 개인적인 생각엔 지리산에서 나름의 신념으로 투쟁을 벌여왔으나 이념의 차이로 토벌당할 수밖에 없었던 빨치산들의 슬픈 영령들이 붉은 철쭉으로 피어난게 아닌가 싶지만.. 사설은 여기까지만 하는 걸로 하고.. 산행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보죠.
트레킹 멤버 중 여섯명(강치 꼬 푸근 푸하 한쏭 홍이)과 객원대원 지니까지 총 일곱명이 철쭉으로 유명한 지리산 정령치 일대를 5월 20일에 올랐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등산을 해야했기에 전날인 19일 밤에 남원의 무아 게스트하우스로 집결했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씻고 등산 전 든든한 아침을 위해 향한곳은 일명 김천, 김밥천국이었죠. 아침을 먹고 점심 때 먹을 김밥을 주문하고 각자 건너편 편의점에서 얼음물과 커피를 준비합니다.
원래는 남원 바래봉으로 시작해 팔랑치를 거쳐 정령치로 내려오려는 코스로 잡았는데 정령치에서 밑으로 내려오는 버스가 없어서 과감히 반대로 코스를 바꾸게 됐죠.
정령치까지 택시 두대로 이동해 정령치부터 세걸산 부운치 팔랑치 바래봉까지 등산하는 코스를 목표로. 남원 콜택시 두대를 호기롭게 불러 정령치로 향합니다. 인심좋은 남원 택시운전사분은 굽이굽이 올라가는 길 폭포도 들러서 구경도 시켜주셨답니다.
정령치는 해발고도 1172m로 거기서 보이는 지리산과 남원 일대 뷰는 정말 끝내줍니다. 정령치까지는 차로 올라갈 수 있어서 거기서 주변 등산로 일부를 산책하러 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정령치에서 삼사십여분 올라가다보면 철쭉군락지가 환상적으로 펼쳐집니다. 가뭄이 길어져 가까이서 보면 꽃과 잎들이 오그라져 있긴 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장관 그 자체입니다.
지리산답게 능선길도 쉽진 않습니다. 이년 반만에 찾은 지리산은 여전히 호락하지 않지만 능선길 사이사이로 보이는 지리산 능성이들은 늘 가슴을 설레게 만듭니다. 고개마다 시원한 찬바람이 불어와 자꾸 주저앉아 간식을 먹게 만드는 덫에 빠지기 일쑤죠.
한 대원은 발톱을 깍는 걸 까먹어 내리막길에서 고통을 호소합니다. 결국 다른 대원의 도움으로 발톱마다 반창고를 감아 충격을 완화시킵니다. 장거리 산행시 발톱은 항상 잘 관리를 하고 가야함을 온 몸으로 깨닫는 순간입니다.
그동안 단타 산행만 치고 다녀 모두들 장거리 산행이 오랜만인지 속도가 점점 무뎌집니다. 뜨거운 오월 햇살도 한몫 더해줍니다. 결국 부운치에서 우리는 하산을 결심합니다. 눈 앞에 (사실 두시간 반 정도 거리) 바래봉을 두고 그저 누워서 멀찌감치 감상에 들어갑니다. 팔랑치까지만 갈까도 고민했지만 이미 부운치 능성이에 누워버린 몸들은 입만 동동거리고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이미 정령치부터 14km를 넘게 행군했기 때문에 많이 걷긴 했답니다. 내려가는 지름길로 추정되는 임도길을 찾아내고 그리로 향합니다.
하산길 한참을 내려가다 잠시 앉아 쉬는데 갑자기 한 대원이 저 멀리 뭘 보더니 경악스러움을 금치 못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다같이 놀라서 그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니 지리산 가득한 소나무 군락지에서 바람에 송악가루가 회오리처럼 몰려옵니다. 별다른 방비책이 없던지라 그저 가루바람을 뒤집어씁니다.
다시 힘을 내 걸어보지만 하산길도 거리가 꽤 됩니다. 하산길 끄트머리에서 택시 한대가 정차된 게 보이고 때마침 또 다른 차에서 학생으로 보이는 두 명의 아이가 운동화와 츄리닝 차림으로 내립니다. 아마도 바래봉 등산을 하러 가는 것 같습니다. 현지 아이들은 오후 네시에도 여기서 등산하고 해지기 전에 하산이 가능한가 봅니다.
한 대원이 기지를 발휘해 차량을 마을 버정까지 탈 수 있는지 재빨리 물어봅니다. 그 아이들의 어머니께서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절반이 그 차에 타고 나머지는 택시로 이동하게 됩니다.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왜 여기로 내려왔냐고. 정령치에서 부운치까지 왔다가 시간도 많이 지났고 방전되어 내려왔다고 하니 몇시에 등산을 했냐고 물으십니다. 여덟시 반에 출발했다고 당당히 답합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니 나는 오늘 아침 아홉시에 정령치에서 출발해서 이미 바래봉까지 갔다가 집에 와서 씻고 우리 애들 등산로까지 데려다준건데 라고 하십니다. 뭐라 할말이 참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가 부끄럽지 않습니다. 볼 건 다 봤고 걸을만큼 걸었고 떠들만큼 신나게 떠들었기 때문입니다. 바래봉까지 못간 건 못내 아쉽지만 이미 철쭉은 질리도록 본 거 같아 만족스러웠으니까요.
뭐가됐든 지리산 서북능선 일부 탐험 완료!
정령치-세걸산-부운치-운봉마을 총 16.9km
2017년 5월 20일 오전 8시 28분 산행시작
2017년 5월 20일 오후 4시 산행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