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가 <까칠남녀> 사태를 정리하기 위한 회사의 선택은 ‘조기종영’이었다. 은하선 작가의 복귀와 기존 패널들이 참석해 유종의 미를 거두는 ‘정상화’의 길을 포기한 것이다.
EBS는 6일, 성소수자-여성-언론계-교육-학부모단체들의 은하선 작가 하차 철회 요구에 대한 답변을 보내왔다. EBS는 “<까칠남녀>는 안타깝게도 2월 5일까지만 방송된다”고 밝혔다. 두 차례 답변을 미뤄왔던 EBS였다. 그런 EBS가 논란이 된 프로그램을 종영(5일) 시킨 뒤에 답변서를 보내온 것이다. ‘이미 종영됐는데 니네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모습은 마치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된 은하선 작가의 강제하차와 묘하게 닮아있다. ‘일개 출연자인데 강제하차 시킨 들 무엇을 할 수 있었어’라는 판단. 결국, <까칠남녀> 사태는 EBS가 출연자와 시청자-시민사회를 얼마나 하찮게 생각하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행보라고 볼 수밖에 없다.
EBS가 밝힌 <까칠남녀> 조기종영 논리도 수긍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EBS는 답변서에서 “담당 CP는 특정 출연자의 행동이 문제가 된다고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법률 검토를 통해 출연 정지를 결정했다”, “<까칠남녀> 제작진들 또한 은하선 하차에 반발해 녹화 보이콧에 나선 출연진들을 설득하고 대안을 검토해지만 합의를 도출해 내지 못했다”고 변명했다. EBS는 은하선 작가의 행동이 문제라고 되풀이했다. 명예롭게 종영하지 못하게 된 원인도 ‘녹화 보이콧에 나선 출연진’의 책임으로 돌렸다. ‘EBS에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얘기의 무한반복쯤으로 보면 된다. <까칠남녀> 담당CP 또한 ‘법률 검토’라는 절차를 밟았다는 점을 강조했으니 말이다.
반면, 해당 단체들의 질문에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우리는 은하선 작가 하차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은하선 작가가 SNS에 해당 글(퀴어문화축제 후원번호 및 십자가 모양의 인공성기 사진)을 올린 맥락이 중요하다고 얘기했다. 또, 이미 구두경고를 받은 부분이기 때문에 추가징계를 받을 이유가 없다고도 설명했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EBS는 어물쩍 넘어갔다.
EBS는 답변서에서 <까칠남녀>에 대해 “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성 역할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극복하고자 했던 이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와 그동안 이루었던 일련의 성과가 덮어져서는 안 된다”라고 밝혔다. 해당 문장을 읽는 순간 실소를 금치 못했다. 프로그램의 성과를 한 순간에 뒤엎은 건 다름 아닌 EBS다. 그 사실을 모른다는 말인가. 또 다른 대목도 등장한다. “EBS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익을 신장하는 역할을 계속 수행하겠습니다”, “EBS는 우리 사회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바람직한 공동체가 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과연, <까칠남녀> 조기종영을 접한 시민들 누가 해당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EBS는 <까칠남녀> 은하선 작가 하차를 둘러싼 논란을 두고 여러 차례 내부 논의를 거쳤다. 이 과정에서 <까칠남녀> 일선 제작PD들을 중심으로 뜻을 같이 하는 PD들은 ‘은하선 작가 하차 철회’를 요구하는 입장문을 장해랑 사장에게 전달됐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EBS <까칠남녀> 사태는 전형적인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사건이 돼 버렸다. EBS는 “<까칠남녀>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성차별과 성 역할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극복하자는 기획 의도로 편성됐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어떤가. 성소수자들은 차별해도 되고 탄압의 대상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EBS가 말하는 ‘시대정신’인가. EBS에 제대로 된 시대정신을 똑똑히 밝히고자 한다. 성다양성이 시대정신이다. 그렇기에, EBS의 <까칠남녀> 불명예 조기종영은 교육방송 역할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우리 단체들은 이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더욱 공론화 하여 EBS가 어떤 반 인권적 행태를 저질렀는지를 똑똑히 보여 줄 것이며 나아가 이를 통해 우리사회에 만연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에 맞서 지속적으로 싸워 나갈 것을 천명하는 바이다.
2018년 2월 6일
(가)페미니즘교육실현을위한네트워크, 매체비평우리스스스로,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민주언론시민연합,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27개 단체 및 모임),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교조여성위원회,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초등성평등연구회, 페미니스트 교사모임, 페미당당,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 한국여성단체연합 7개 지부, 28개 회원단체,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한국청소년성문화센터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