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다이 가족 테마 글 첫번째
<이렇게 죽으면 이름도 안 남겠지 싶을 때 한 연구>
글. 선명한 효비자
연구개요; 우울의 실마리
들숨에 미련 없고 날숨에 ‘살기 싫다’ 소리가 절로 나오는 그런 나날들이다. 괴상한 꿈을 꾸다가 해가 밝아서 깨면,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기 싫다. 외출은 고사하고 밥 차려먹기도 어렵다. 지난 일은 한없이 곱씹을 수 있지만, 앞으로의 일은 생각하기도 싫다. 더럽지만 소중한 내 방에 박혀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몽땅 내다버리고 싶다.
나는 내가 무엇 때문에 우울한지 연구를 해보기로 했다. 지금 나는 새로운 일을 맞닥뜨리는 데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익숙한 곳에 있는 게 편하다. 기분은 복잡하다. 혼자 있고 싶으면서 혼자 있기 싫다. 뭔가 꼬인 것이 내 안에 있다. 뭘 하고 싶은 것인지, 뭔가를 피하려는 것인지 헷갈린다. 이 연구의 끝에 내가 작은 실마리라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의제-1 무엇이 나를 어렵게 하나
우리 집엔 인간 둘과 고양이 한 분이 (임시로)살고 있다. 동거인은 나와 네 살 터울인 친언니다. 우리는 빚을 져서 이 집의 보증금을 냈다. 그런데 언니는 그 빚을 갚으면서 일하고, 나는 백수다. 언니는 월급을 받고, 나는 용돈을 받는다.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용돈을 받는 내가 자랑스러웠다가 다시 수치스러워진다. 한사람 몫을 못하는 것만 같은 부채감은 약을 먹어도 상담을 다녀도 사라지지 않는다.
각자가 자기 역할을 수행할 때 유지되는 걸 체계라고 하지 않던가? 독립/독거는 ‘가족’이라는 체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는 걸 수도 있다. 같이 살면 주거공간에서 나오는 일거리를 나눠야한다. 비용도 함께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정확하게 나뉘어 수행되기 어렵고, 그로 인해 동거인 사이엔 갈등이 계속된다. 동거인이 가족일 경우 갈등해결은 더 복잡하다.
나는 삼남매 중 둘째다. 둘째 딸이어서 언니 것을 물려받았고, 남동생보다 관심 받지 못했다. 새 것을 원하면 철없는 자식이 됐고, 동생을 돌보지 않으면 부족한 누나가 됐다. 그래서 눈치 빠르고 욕심 많은 아이로 자랐다. 불리한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우린 서로에게 불행이었던 상황이 많았다. 언니는 첫째라서 포기한 것들이 많고, 나는 둘째라서 못 받은 관심이 많고, 동생은 막내라서 참은 것들이 너무 많다. 이미 서로에게 주고받은 상처가 많았다. 그런데 앞으로도 계속 연결된 채로 살아야한다. 나는 이미 지쳤는데, 그래서 이 체계는 힘들다.
의제-2 나의 욕망은 어떤 것일까
서울에 올라와서 언니랑 자취를 하는데, 원룸을 둘이서 쓰려니 작은 일도 스트레스가 되기 십상이었다. 분리수거가 엉망으로 되어있다거나, 손님을 초대하려면 다른 한 명이 외박을 해야 하는 것 등등 불편함이 많았다. 나는 언니의 위생관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길바닥에 앉거나 가방을 내려놓는 일은 더럽다고 질색하지만 쓰레기는 아무리 쌓여도 먼저 버리는 법이 없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돌돌이로 잡아내기 바쁘면서 다 쓴 화장솜이나 여드름패치는 아무데나 두고 까먹는다. 게다가 언니는 종종 나에게 상처가 되는 말들을 했다.
나는 울면서 투 룸을 찾아다녔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집으로 이사했고, 방을 따로 쓸 때의 장점은 생각보다 더 많았다. 내 방 만큼은 내가 꾸미고 싶은 대로 꾸미고, 어지르고 싶은 만큼 어지를 수 있었다. 눈치 보지 않고 새벽동안 내 할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공간이 보장되어 있다는 게 이렇게나 아늑한 일인 줄 몰랐다. 이 방은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가진 독방이다. 지금까지 가져본 것 중 가장 아늑한 내 공간이다. 이 방의 의미를 곱씹는 것이 지금의 내 상태를 긍정하는 효과적인 방법인 것 같다. 나는 그저 편하게 있고 싶은 것이다.
치열하게 살았지만 가진 것은 방 한 칸인가, 라는 생각이 들 때 쯤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는 내가 편하다고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다시 말해, 보다 독거에 가까운 주거형태로 편입해왔다. 도피의 형태로 나는 계속 이동했다. 본가에서 자취방으로, 원룸에서 투 룸으로, 머릿속에 그려보던 ‘혼자서도 부족함 없이 행복한 삶’에 조금씩이나마 가까워지며 욕망의 실현을 반복했다.
연구결과; 정산의 시기
정산의 시기가 왔다. 가끔 우리는 자기 기분과 지나온 전투에 대해 꼼꼼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 내가 가진 방과 넉넉한 시간, 그리고 보이지 않는 무거운 마음을 재보았다. 나는 알게 모르게 계속 벗어나고 싶어 했다. 상처받은 몸을 숨기기 위해 여기까지 왔던 것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괴롭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데 아직까지 별 문제가 없는 것은 내가 이만큼 도망쳐 온 덕분이다. 엄마의 자랑거리가 되길 게을리 하기, 아빠 전화 무시하기, 친구를 초대해서 밤새 놀기 등등은 내가 헤쳐 온 크고 작은 전투의 전리품이다. 우리는 타인 앞에서 도리를 다 하기 위해 골몰하는 일을 버거워 한다. 좋은 자식이나 배우자가 될 고민을 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혼자 살아도 괜찮으면 좋겠다. 내가 누군가를 초대하지 않는 이상, 누구도 나에게 뭔가를 바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보다 좀 더, 온전히 나의 것을 누리면 좋겠다. 걱정으로 마음이 휘둘리지 않게, 도망쳐 온 것들에 붙잡히지 않고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원하는 것을 먼저 살필 수 있도록, 내가 편한 것만 찾아 도망쳐도 괜찮고 싶다. 연구 결과; 나는 계속 도망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