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다이 가족 테마 글 두번째
<거리감 유지의 득됨>
글. 지은
일본의 배우이자 감독인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이란 누가 보지만 않는다면 어딘가로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이야기했다. 그 말에 너무나 공감이 갔다. 솔직히 맘만 먹는다면 누가 보고 있어도 어딘가로 내다 버리고 싶기도 하다. 솔직한 가족에 대한 내 마음이다.
중학생 때 가출을 한 적이 있다. 내게 소중하다 생각되는 물건들을 싸들고 새벽에 집을 빠져나왔다. 일주일 정도 다른 곳을 전전하며 지내다가 같이 가출을 했던 친구가 들키는 바람에 덩달아서 나 역시 들켰다. 그 즉시 부모님께 연락이 갔고, 다음 날 떠밀리듯 엄마를 만났다. 솔직히 내가 죽어라 달려서 도망치면 못 잡지 않을까? 이 생각도 하며 터미널로 나갔지만 초췌한 얼굴로 나타난 엄마를 보니 도망갈 의욕을 잃고 순순히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와선 그냥 늘 지냈던 대로 있는 듯 없는 듯 지냈다.
당시에는 묻지 않았지만 시간이 꽤 많이 지난 지금 간혹 가족들은 묻는다. 그때 왜 가출했어? 그냥 집이 싫어서라고 얼버무렸지만 사실 내가 가출을 해야만 했던 정확한 이유는 있다. 당시 난 이 놈의 집구석, 이 놈의 가족 다 싫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실 내가 가출한 이유는 하나였다. 이 집에 있다간 정말 살인 낼 것 같아서. 사실은 도망쳤던 거다.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 알게 된 건 성인이 된 뒤였다. 어릴 때 받은 학대 탓이었다. 난 소위 말하는 속도위반으로 태어난 아이였다. 축복받지 못한 아이였다. 당시 아빠는 도박에 빠져있었고, 엄마는 아빠에 대한 원망과 궁핍한 생활에 대한 스트레스를 결국 나에게 풀 수밖에 없었다. 육체적인 학대는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정서적인 학대는 늘 꾸준하게 받았다. 뾰족한 가시가 되어 나를 갈가리 찢어놓은 말은 “너만 아니었어도“였다. 사랑받지 못하고 큰 아이는 자존감이 바닥일 수밖에 없었고, 그 상처는 켜켜이 쌓여서 독을 품고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난 가족에 대한 큰 애정이 없다. 내게 가족이란 원치 않지만 할 수 없이 이어나가고 있는 관계다.
서로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 거리
내 첫 독립은 대학교를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방학 때는 잠깐 집으로 다시 들어가기도 했지만 그 마저도 어느 순간부터 계절학기는 들어본 적도 없으면서 방학 때도 기숙사 연장 신청을 해서 집에 내려가지 않고 지냈다. 졸업 후 취업하기 전까지 반년 좀 안 되는 시간 동안 다시 집에 들어가서 지냈는데 사실상 이 때는 집에서 자취하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부모님은 평일에는 일하는 곳에 있는 집에서 지냈으며 동생들은 야자를 하고 늦게 오거나 기숙사에 들어가서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온전한 내 공간은 아니라 서둘러 집을 벗어나고 싶어서 준비하던 공시는 빠르게 포기하고 취업을 해서 수도권으로 올라왔다. 그 뒤 난 쭉 혼자 살고 있다.
아직도 난 가족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다. 그래도 어릴 때보단 가족에 대한 애정이 조금 더 생겨난 것 같다. 5, 6살 나이 터울이 좀 있는 동생들과 어릴 때는 말 섞어본 기억도 없는데(동생들 역시 어릴 때는 내가 기억에 아예 없단다.) 지금은 매년 동생들이 한가할 때면 올라와서 같이 놀기도 한다. 모두 성인이 된 이후에는 1, 2년에 한 번씩은 가족여행도 주기적으로 가고 있다.(물론 늘 그 시간이 좋지만은 않다.) 지금은 어느 정도 겉으로 보기에 화기애애한 가족의 모습 정도는 나오는 듯하다. 가족과 떨어져서 지낸 시간이 길어지니 오히려 같이 살던 때보다 사이가 좋아졌다. 그 이유는 단언컨대 거리감 때문이다. 가족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피 조금 섞인 거 빼곤 남남인 그들이 한데 뭉쳐서 지지고 볶고 산다는 건 서로에게 너무나 피곤하고 가혹한 일이다. 혼자 지낼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인간은 혼자 사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각자의 집은 따로 있으면 좋겠다. 농담 삼아(솔직히 진담이지만) 전 애인에게 네가 옆집에 살면 좋겠어, 라고 한 적이 있다. 가까이 같이 있고 싶지만 함께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옆집이나 위, 아래 근거리에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내 집에 잠깐 손님들이 오가는 건 너무나 반갑고 좋은 일이지만 같이 살고 싶지는 않다.
가족이면, 사랑하는 사이면 반드시 같이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우리가 정말 같이 사는 게 맞는 사람인지 판단을 제대로 못하게 하는 것 같다. 모든 인간관계에는 적정 거리감이 필수다. 오랜 시간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아왔던 가족이라면 더더욱.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추석을 앞두고 있다.(올리는 건 늦게 올리게 됐지만 쓸 당시에는 추석 전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몇 년 안 내려갔던 걸 빼면 늘 고향집으로 내가 내려갔었는데 올해는 가족들이 올라오기로 했다. 2박 3일의 서울여행을 하기로 했는데 사실 내 집에서 자는 게 조오금 걱정이 된다. 그래도 3일만 참으면 되니까. 이 정도는 내가 양보해줄 수 있다. 어릴 땐 이런 모습 상상도 못 했는데 거 참 신기하다. 독립이 득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