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트워크는 ‘안전’하지 않다.
나기
잡지를 만들 때 문화 추천 코너를 짜면서 ‘페미니스트가 안전하게 볼 수 있는 책’이라는 컨셉을 제안했던 적이 있다. #00_내의_성폭력 이라는 헤시태그와 함께 성폭력 사건에 대한 폭로가 한참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논의를 거쳐 반려되었지만 기억에 남는 한 마디는 이거다.
“(성폭력에 있어서) 죽기 전까지 ‘안전’한 사람이란 없다.”
우리는 이때 이 말을 얼마나 ‘우리’ 안의 이야기로 생각했을까. 나-로 고쳐 말하고 싶다. 나-는 이때 이 말을 얼마나 ‘우리’ 안의 이야기로 생각했을까. 남성중심적인 문화와 성별위계 속에서 일어난 ‘남성’이 저지른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 화를 내고 내 책장이나 내 마음속에 자리를 차지했던 가해자의 콘텐츠를 잘라버리면서 이 문제가 내 옆과 나와 내가 속한 조직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을 충분히 생각했더라면, 작년부터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퀴어 커뮤니티, 특히 성소수자운동단체 내에서 일어난 여러 성폭력 사건에 이렇게 우왕좌왕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1_무성애 가시화 행동 무:대(구 에이로그 팀) /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 팟캐스트 프로젝트 승냥이FM / ACE STORY / (구) 논모노로그 /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에서 활동해온 (전) 활동가 케이에 대한 문제제기
2016년 (구) 에이로그 케이와 팀 활동 중지하며 저작물에 대한 권리 분쟁
무 : 대로 단위명 변경, 전 활동가 케이의 착취, 횡령에 대한 문제제기
2017년 10월 무성애 가시화 주간 즈음 케이에 대한 성폭력, 착취, 횡령에 대한 문제제기 트위터 상으로 다시 제기됨
(구) 논모노로그 해체
2017년 11월 여행자 징계결정
케이가 활동을 했던 단위로서 행성인에 대한 책임 문제 제기
2018년 3월 케이에 대한 행성인 입장문 발표
2018년 3월 전 활동가 케이의 폭력에 대한 입장문과 협조 요청 연명서
2017년 무성애 가시화 주간이었던 10월 넷째주 전후로 트위터의 케이 아카이빙 계정 등을 통해 무성애 가시화 운동 및 여러 퀴어 운동에서 활동해온 전 활동가 케이에 대한 공론화가 진행되었습니다. 착취, 횡령, 성폭력, 혐오발언 등에 대한 증언이 이어졌고 [생략]
전 활동가 케이는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성희롱과 성추행, 데이트강간을 비롯 다수의 성폭력을 저지르고, 여러 단체나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가입하여 팀원들에게 노동 착취, 횡령을 일삼았습니다. [생략]
전 퀴어 활동가 케이의 폭력에 대한 입장과 협조 요청 연명서 [20180308]
성폭행, 성추행이란 우리나라 사법기관이 유권해석으로 밝힌 바와 같이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수치심을 유발케 하는 행위”를 포함하는 것은 물론, 행위자의 의사, 행위의 태양, 발생한 결과, 피해자의 의사, 신체적 혹은 정신적 조건, 행위자와 피해자와의 관례, 주변의 상황, 당시의 사회구조, 경제 및 교육수준, 신분관계 등에 따른 당사자간의 위계의 존재나 정도 등을 아울러 전방위적으로 검토하여 그것이 사람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 내지는 위해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바,
여기에서 사람의 의사라 함은 확정적이고 사전적인 의사는 물론 사후적인 의사나 불확정적인 의사 또한 상대방이 예견할 수 있는 정도를 고려하여 참작되어야 할 것이고, 피해자의 의사결정에 행위자가 개입한 정도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이를 앞서 밝힌 피해자의 진술과 비교하면 피징계자는 피해자들에 대하여 신체 접촉 또는 성행위의 동의 여부와 의사를 고의적으로 묵살하거나 기존에 결지하던 태도와 의사를 자신의 교육수준이나 사회구조적 위계를 이용하여 교란하고 자신의 의사에 따르도록 적극적으로 설득하여 충분히 성숙되지 않은 형식적인 동의 의사를 무리하게 표시하도록 한 바, 피임기구를 사용하지 않은 성행위와 기타 신체접촉 등은 피해자의 동의 없이 이루어졌다고 봄이 상당하며 이는 각 성폭행, 성추행으로 평가될 수 있다.
전 활동가 케이에 대한 여행자 징계결정문 [171110 징계결정, 180114 공개]
2_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이하 행성인)에 대한 문제제기
2018.03.06 페미퍼레이드 공동주최단위로 행성인 여성모임이 함께 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 및 행성인 나라 활동가에 대한 성추행 문제제기 트위터 상에 올라옴
#행성인보이콧 헤시태그
2018.03.09 행성인 반상근활동가 나라의 성폭력에 대한 신고받는 공고
행성인 조정위원회 알림
2018.03.17 행성인 사과문
성폭력을 포함한 인권침해와 공동체에서의 배제, 인권단체로서의 책임을 방기한 것에 대해 피해자와 피해자를 지지하시는 모든 분들, 그리고 행성인을 믿고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행성인 운영위원회는 (1) 행성인 회원이었던 케이 전 퀴어활동가의 성폭력과 노동착취, 횡령 등 인권침해 가해 문제제기에 대한 단체의 미흡한 조치, (2) 반상임활동가 (현재 직무정지 되었고, 조정위원회에 회부되어 있습니다.)이자 전 사무국장인 나라 활동가의 성폭력 가해 사실에 대한 방조와 묵인 (3) 현 성소수자노동권팀장의 성폭력과 주취폭력 등에 대한 피해자와 피해자를 지지하는 분들의 문제제기를 통해 문제제기의 대상이 된 회원 뿐 아니라 행성인의 조직문화의와 구조에도 폭력을 용인하고 묵인하도록 만드는 잘못이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서 사과드립니다. [2018.03.17 게재]
동성 간 폭력에 대한 방어적 심리
#미투가 시작된 이후, 그전에도 너무 지겨웠던 질문이 반복된다. “어디까지는 괜찮아?” 어디까지 괜찮은지 알고 싶은 마음. 동의하는 의사표현이 무엇인지, 그 동의에는 얼만큼의 불평등한 배경이 숨어있는지 알고 싶지도 않은 게으른 질문에는 물론 화가 나지만 거의 모든 경우에 진심을 가지고 물어보는 저 질문 자체는 유효하다. ‘여자끼리’ 있다고 해서 신체적인 접촉이나 ‘사소한’ 폭행에 무뎌지고 있진 않은가? 또, 정말 ‘여자끼리’ 있다고 생각해서 나와 다른 상대방의 젠더 정체성이나 성적 긴장도, 피로도에 대해서 정말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동성’ 간 일어난 폭력에 대해서는 남성이 여성에게 저지른 그것보다 다른 감정, 다른 태도를 보이게 되는 것- 여전히 나에게도 있는 방어적인 심리다. 물론 폭력이 일어나게 된 맥락과 구조에 대해서 남성중심적인 성별위계와 다른 요인들이 있다는 것에 대한 고려는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고려를 폭력의 정도와 위력의 정도, 피해자의 충격에 대한 짐작에 대해서도 적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성’에 의한 성폭력과 ‘동성’에 의한 성폭력 사이에 다르게 적용하고 있는 각자의 감각과 판단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그것이 나를 예민하게 만들고 당신을 예민하게 만드는 한걸음일 것이다.
언니네트워크는 ‘안전’하지 않다
우리 안의 평등과 위계란 무엇일까. 차이로 구성되는 네트워크를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면서 나이주의를 타파하고 다양한 젠더정체성과 위계없는 관계, 평등한 조직문화가 언니네트워크의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내세워 왔다. 위계없는 관계란 무엇일까. 우리가 위계가 없다고 말하면 위계는 없어지는 것일까. 단체의 연차와 활동의 연차가 쌓이면서 나도 모르게 주어지는 위치가 있고 오래된 관계에서는 위계가 보이지 않아도 새로운 사람에게는 느껴지는 것이 있다. 언니네트워크는 평등하다-라는 명제가 우리의 눈을 가리는 순간도 많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내 영-young-한 단체로서 영-young-한 존재로서 단체와 자기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 언니네트워크와 언니네트워크 활동가로서 자각하고 있어야 할 위계에 무심해지기 쉽다. 왜 ‘만년소년’이라는 ‘아재감성’에 대해서는 그렇게 치를 떨면서 나 역시 ‘만년소년’이고 싶을까.
사람이 있는 어느 곳이든 완벽한 안전이란 없다. 이 말이 정말로 우리에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지금 아는 것이 필요하다. ‘예상치 못한’ 문제제기란 예상했어야 하는 책임의 태만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언니네트워크는 늘 어떤 공간을 성별이분법적으로 분리하는 것이 공간과 관계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문제제기해왔다. 그 문제제기를 지금, 언니네트워크로 돌려야 하지 않을까. 사건이 일어나고 피해자가 문제제기 한 뒤에야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캠프에서 우리가 지켜야할 수칙을 만들듯이 일상적으로, 언니네트워크 안의 관계와 정말로 성폭력 사건에 대한 문제제기가 일어났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내규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내규가 부족한 것일 수 있다. 조직 내에 문제 상황이 일어났을 때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어떤 절차를 밟을 수 있는지를 회원들이, 활동가들이 알지 못한다면 공동체 ‘내’에서의 해결이라는 것은 시작조차 이루어질 수 없다. 조직 ‘내’ 성폭력 사건의 ‘해결’이라고 했을 때, 우리는 여전히 조직 ‘내’ ‘외’가 무엇인지, ‘해결’이 무엇인지 많이 모른다. 몰라서 부끄럽고 몰라서 무섭다. 그리고 예민한 눈으로 산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모두에게 제안한다. 이 피곤을 함께 해달라고. 우리의 두려움을 함께 해결해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