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남 부부와 그 혈연 중심의 가족으로부터 벗어나 그와 다른 모습의 가족을 꾸리려고 하는 이들은 법적으로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라는 요구를 해왔다. 그 중 하나가 동반자 등록법이다.
Part_1 소수자 공동체의 가족구성권 이슈의 등장
2000년대 초반, 동반자 등록법은 가부장제와 이성애중심적 결혼제도를 비판하는 페미니즘 운동, 탈시설 독립을 이야기하는 장애여성운동, 동성파트너십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낙인에 저항하는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 운동이라는 큰 흐름에서 등장하였다. 이때는 호주제 폐지를 두고 떠들썩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이성애와 혈연 중심의 가족 구성 방식으로부터 벗어난 가족들이 가시화되고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가족을 꾸릴 수 있어야 한다는 가족구성권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2002년부터 “다름으로 닮은 여성연대”(이하 다닮연대)는 비주류 여성이 겪는 차별에 저항하는 ‘무지개시위’를 벌였다. 다닮연대는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 “장애여성공감”, “전쟁을반대하는여성연대 WAW”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동안 이성애와 혈연 중심의 가족은 여성 성소수자, 장애여성 등 비주류 여성들에게 보살핌의 이면인 가족에 의한 차별과 억압을 행사해왔다. 따라서 다닮연대는 다른 형태의 가족을 상상해보아야 하며, 그들이 다름을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자료: 다닮연대 현수막 (출처 : 다닮연대)]
[자료: 다닮연대 현수막, 피켓 (출처 : 다닮연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강화하는 모든 차별과 폭력을 반대한다!
△장애여성도 가족을 다양하게 구성할 권리가 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폭력성이 근절되지 않는 한 일상적인 평화란 없다!
△혈연 중심, 이성애 중심의 정상가족 중심주의를 반대한다!– 2004년 다닮연대 무지개시위 슬로건
2003년에는 비슷한 시기에 원가정으로부터 독립한 세 명의 장애여성들이 꾸린 가족을 담은 다큐멘터리 <거북이 시스터즈>(2003)가 개봉했다. 이들이 꾸린 가족은 ‘정상’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그로 인해 이들은 생활을 이어나가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들이 꼽은 문제점은 주거 문제, 법적 보호자 문제 등이었다.
[자료: 거북이 시스터즈 영화장면 (출처 : 장애여성공감)]
처음 장애여성 셋이서 공동체를 꾸린다고 나왔을 때 정말 막막했다. 동사무소에 가서 장애여성 셋이 사는데 어떤 사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직원이 “아무것도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결혼하라는 것이었다. 장애남성이랑 결혼하면 임대아파트도 나오고 뭐도 나오고 하니까. 그래서 내가 중증장애인이 세 명 사는데 왜 아무것도 받을 수 없냐고 하니까 모르겠다고 하더라.
– 박김영희 (전 장애여성공감 대표 / 2007년 동반자등록법 제정 간담회 발언 중)
2005년 호주제 폐지 이후에 가족에 대한 논의들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2006년 다양한 가족구성권에 대한 요구, 문제, 맥락에서 “가족구성권연구모임”(이하 가구권)이 다양한 가족형태에 따른 차별해소와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가족구성권 연구모임은 2006년 8월 민주노동당의 제안으로 가족제도 자체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바탕으로 가족과 관련하여 가족 안팎을 아우른 차별을 없애고 가족제도로부터 배제된 집단들의 가족구성권을 보장하기 위해 단체 및 정당 활동가 연구자 전문가들이 모여 구성한 모임이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인 것은 평소 현실 생활에서 경험한 가부장적 가족제도에 대한 문제와 자신의 정체성을 통해 차별받았던 문제 그리고 견고한 차별의 틀에 대한 문제의식들에서 비롯한 것이다.
– 2011 가족구성권연구모임 5주년 가족구성권 자료집 중
[자료: 가족구성권연구모임 5주년 모임 (출처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홈페이지)]
Part_2 대선/총선에서의 동반자등록법 공약 등장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처음으로 동반자 등록법이 공약으로 등장하였다.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는 동성커플과 동거 이성커플을 위한 동반자 등록법 공약안을 내놓았다.
[자료: 동반자등록법 제정 간담회 (출처 :권영길 다음 블로그 http://blog.daum.net/kwondlp/5432552)]
(가칭)’동반자등록법’을 통해 동성커플, 이성 동거커플, 장애인 공동체처럼 서로 합의하에 지속적인 생활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다면 법적인 ‘동반자’의 지위를 보장할 것을 제안합니다.
– 권영길 후보 ‘동반자등록법’ 제정 공약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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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동반자 등록법이 공약으로 등장하였다. 진보신당의 최현숙 후보가 차별금지법 및 동반자 등록법 제정을 약속했다. 성애적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 개인들 간의 결합에 대한 논의가 밑바탕이 되었다.
1. 동반자법 제정으로 성소수자 파트너쉽 인정, 사실혼 관계 인정 등 다양한 가족구성의 권리를 확보하겠습니다!
2. 제대로된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모든 차이에 따른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기반을 확보하겠습니다!!!
3. 이성애 가족 중심의 법 제도를 개혁하겠습니다.
4. 여성·소수자의 입장에서 의료 및 공공 서비스에 대한 평등한 접근을 확보하겠습니다.– 진보신당 최현숙 선거운동본부 정책 및 공약집 중
[자료: 레즈비언 정치 도전기 영화 포스터 (출처 : 연분홍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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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_3 구체적 법제도 마련을 위한 시도들
2011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발족하였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 방지를 목적으로 하며, 이들이 꾸린 가족, 생활공동체에 대한 차별 또한 포괄한다는 점에서 가족구성권, 동반자 등록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13년에는 김조광수, 김승환의 동성결혼식을 기점으로 동성결혼의 법제화와 파트너십의 제도적 보장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촉발되었다. 2013년 12월 10일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이하 가구넷)가 발족하여 서대문구청에 혼인신고를 접수하는 과정을 함께 하였다. 2014년 5월 21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서대문구청장의 혼인신고 불수리처분에 대해 불복신청서를 접수하였으나 법원은 동성 간 혼인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가족구성에 대한 법제도 논의는 크게 동성결혼 법제화와 동반자등록이라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동성결혼 법제화와 동반자등록은 이성애·혈연 중심의 가족 제도에 반기를 든다는 점에서 같은 기반을 가지고 있다.
[자료: 제19회 서울퀴어문화축제 가구넷 행진 (출처 : 오마이뉴스)]
2014년 국회성평등정책 연구포럼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진선미 의원 등이 “생활동반자에 관한 법률”(이하 생동법)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 발제문에서 진선미 의원은 가족의 위기를 만들어낸 것은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결혼제도이며, 경직된 결혼 제도 이외의 다양한 가족구성제도가 필요하고 주장했다.
[자료 : 생활동반자법률에 관한 토론회 (출처 : 진선미 의원실)]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 또한 동성 가정, 미혼모, 동거노인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취지의 동반자 등록법을 공약으로 세웠다.
문재인 정부 이후, 2017년부터 현재까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동반자 등록법을 제정해달라는 요구가 꾸준히 있어왔다. “정형적인 직계 가족만이 아닌 한 개인으로서 어떤 구분도 없이 법적 보호받을 수 있는 새로운 사회 시스템 구축이 시급합니다.”, “노인들이 서류뿐인 혈연관계 때문에 법의 사각지대에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동반자 등록법이 절실합니다.”, “가족이 아니어도 도움 줄 사람을 보호자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등의 내용으로 청원이 올라왔다.
[자료: 동반자등록법 제정 촉구 청원 (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후보인 정의당의 김종민 후보와 녹색당의 신지예 후보가 공통으로 ‘동반자 관계 증명 조례’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세웠다.
가족에 대한 한국사회의 주된 정서이자 개념은 아직까지도 이성애를 기반으로 한 여남 부부와 그들의 자녀로 이루어진 형태이다. 이런 맥락에서 1인 가구 비율이나 이혼율 증가, 출생률 감소 등의 현상은 가족의 위기로 해석된다. 또한 누군가는 동반자 등록법이나 동성결혼 법제화가 가족의 해체를 야기할 것이라며 우려하고, 많은 이들이 이에 동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결국 정상가족이 아닌, 이미 존재하고 있는 수많은 형태의 가족들을 지우고 그들을 법과 제도 밖으로 밀어낸다. 현실에서 함께 살아가지만 서류상으론 존재하지 않는 가족들이 있어왔다. 우리에게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꿈꾸고 만들고 변형하고 헤어지고 다시 살아가기 위해 법제도적 기반이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 계속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