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운동 하루이틀하고 말 것인가라는 의미와 비혼운동의 어제와 오늘 혹은 오늘과 내일의 의미를 가진 아카이브 꼭지 타이틀입니다. 호주제 폐지, 영페미니스트운동, 장애여성운동, 성소수자운동, 차별금지법, 가족구성권운동의 자장 안에서 등장하고 확장되고 변화해 온 비혼운동의 맥락을 ‘사람’을 통해 보여주고자 합니다.비혼원투데이는,
PLAY B 비혼의 역사를 재생하다 2편 : 생활동반자등록법
최현숙 – 구술생애연구자. 2008년 총선 종로구 진보신당 국회의원 후보
-인터뷰 진행 : 나기, 영희
-영상 촬영/편집 : 영희
[인터뷰 전문]
자기소개?
80년에 결혼을 했고, 81년과 84년에 두 명의 아이를 출산했고, 87년부터 천주교 사회운동을 통해서 진보진영의 운동에 같이하고, 2000년부터는 진보정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활동을 했고 그 과정에서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여자가 생겨서 그 여성이랑 같이 살고 남편과 같이 이혼하고 하는 과정이 있었구요. 그리고 2008년에는 종로에 진보신당 총선후보로, 커밍아웃한 총선후보로 출마를 했고. 2009년, (20)10년경에 진보정당을 탈당해서 노인복지 영역에서 최저임금 노동자로 일하고, (일)하다가 만난 노인들의 이야기 등 자기 살아온 이야기들을 소위 구술생애사 작업이라는 것을 지금까지 한 10년 좀 넘게 12년째 해오고 있는 57년생이니까 육십둘의 여성이에요.
(인터뷰어: “저는 최현숙입니다” 한 번만 해주세요.)
네. 저는 최현숙입니다. (웃음)
2008년 총선에서 동반자법이 우리 선본에 가장 핵심적인 공약으로 들어갔었죠 가장 첫 번째 조항으로. 당시에 한국사회가 정상가족을 중심으로 한 건강가족법에 기반한 법제도의 틀 안에 있었고 그 안에서 다양한 결혼관계와 비슷한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도 성소수자와 비슷한 방식으로 법제도 속에서 차별받는 그런 상황이 있었고, 또 그 당시에는 이미 많은 나라들이 동성애자 결혼 합법화, 혹은 그거에 준하는 다양한 파트너쉽 인정이나 그런 거를 제도화하고 있는 경우들이 많았기 때문에 성소수자 진영에서는 그 이전의 성소수자 운동들의 중요한 이슈였고 그렇기 때문에 총선에서 동반자 법은 가장 첫 번째 정책으로 선택이 됐던 거죠.
실제로 많은 장애인들의 자기 서술들을 보면 원가족 관계 안에서 당한 차별, 거기서의 어떤 소외, 이런 경험들을 굉장히 많이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만들려고 하는 친밀감의 공동체가 꼭 가족은 아닌 경우가 많죠.
그래서 그런 어떤 친밀감의 공동체, 친밀감의 관계들, 공동체들을 가족이라는 틀 속으로 묶으려고 할 때 벌어지는 문제들이 노인이나 장애인이나 최근에 와서는 빈민들의 경우도 많이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여전히 정상가족이라는 틀로 이 사람들을 묶으려 할 때는 굉장히 무리이거나 사각지대가 굉장히 발생한다는 거죠.
나는 특히 큰 딸로 25년을 살았고, 결혼해서는 엄마와 아내로 25년 정도, 24년 정도를 살았기 때문에 그 이후에 혼자 살면서 내가 가장 가벼운 상태인 것은, 가벼운 마음인 것은 집에 들어갈 때 나한테 뭘 요구할 사람이 없다는 것. ‘왜 늦게 왔냐’ 아니면 밥이니 청소니 뭐니 이런 문제를 만들 사람이 없다는 게 너무 가벼운. 내가 들어가서 쉬기만 하면 되는 거죠. 집이 나한테 내가 온전히 쉬는 가장 편한 곳이라는 게 너무 좋은 거 같아요. 옛날에는 그게 매번 스트레스거든요. 누구의 딸로 살면서 ‘왜 이렇게 늦게 왔냐’, 딸이 뭐를 안 했고. 결혼해서는 ‘왜 애엄마가 뭐 그러냐’, ‘왜 늦게 오냐’, ‘누구를 만났냐’ 그런 질문하는 사람이 없이 집에 들어가면 이제부터는 쉬어도 되고 혹은 내가 할 일이 있으면 그 일을 하면 되고 한다는 게 너무 좋은 것 같아요.
나에게는 온전히 나 자신이 원하고 선택하는 삶, 이것이 훨씬 중요한 거고 그런 면에서 나에게 탈기혼, 혹은 비혼이라면 온전히 나 자신에서 시작된 자유로운 선택과 자립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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