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5일
[감자모임] 비혼여성, 정치적 주체로 거듭나기
<비혼여성, 그리고 가족구성권>
작성자: 나비야
해당 글은 아카이브 자료 공유 동의를 구하였으나 공개를 원치 않아서 담지 못하였습니다.
<언니네트워크에서 비혼여성운동하기>
작성자: 난새
‘언니네트워크의 비혼여성 운동 역사’를 주제로 한 발제를 청탁받고,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비혼감자모임을 시작했을 때? 회원 워크샵에서 ‘비혼’을 단체의 중심 의제로 선정했던 때? 아니면 여성가족부에 대한 반대 성명을 냈을 때? 그러다 자꾸 자꾸 머릿속의 필름들이 거꾸로 돌아가 결국 언니네트워크의 시작을 궁리하던 시절까지 회귀하고 말았습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왜 케케묵은 옛날 얘기부터 읊어야만 하는가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
언니네트워크는 어쩌다 생겼을까?
아시다시피(모르셨다면 이번 기회에!), 언니네트워크는 여성주의 사이트 언니네(www.unninet.net)를 기반으로 2004년 11월 27일, 첫 불을 지핀 여성단체입니다.
2000년에 문을 연 언니네는 개인사업자 등록을 한 회사로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체로서의 전망을 접고 비영리 사이트로의 길을 모색하게 되었죠. 그리고 2003년 서울시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성주의자 혹은 여성주의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오픈 되어있는 사이트를 NGO로 운영하기에는 벅찬 난제들이 존재함을 느끼게 되었죠. (비영리단체가 사이트를 운영하는 것이 어렵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 당시 비영리단체는 ‘언니네’ 사이트 그 자체였거든요.) 예를 들어 ‘단체로서 어떤 특정 사안에 의견이나 입장을 표명하기 위해 언니네 회원 4만명(당시 회원수, 지금은 5만명이 넘는답니다. ^^) 모두에게 동의를 얻어야 하는가’와 같은 문제 말이죠. 그래서 새로운 여성주의 단체인 언니네트워크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관점과 지향을 보다 분명히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에요. 그렇다면 이쯤에서 이런 물음표가 던져지겠죠. ‘대체 언니네트워크로 분명히 표현하고 싶은, 다른 관점과 다른 목소리는 무엇이었는가?’
언니네트워크, ‘비혼여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다.
어쩌면 언니네트워크가 첫 불을 지피던 날까지도 운영진이나 회원들 중 그걸 정확히 콕 꼬집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놀랍게도 한 달 만에 모두가 알게 되었습니다. 2005년 새해 벽두에 열린 수다번개의 뒤풀이에서 ‘여성부’가 ‘여성가족부’로의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는 비보를 공유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액션나우팀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월례토론회 감자모임‘의 첫 번째 주제는 ’심란하다, 여성가족부(2005년 2월 23일 개최)‘가 되었습니다. 언니네트워크는 이 토론회의 결과물로 <다양한 삶의 형태를 선택할 권리, 여성이 가족구성원이 아니라 ‘개인’으로서 행복할 권리를 위해 여성가족부에 반대합니다!>는 릴레이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이것이 언니네트워크가 내지른 첫 번째 다른 목소리였죠. 언니네트워크가 ‘여성가족부 반대’ 성명서를 준비하던 그 즈음, 어느 유력한 여성단체에서는 ‘여성가족부 환영’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리고 이 문제는 일회성의 토론회와 성명서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여성을 가족의 틀 안으로 기어이 밀어 넣고 말겠다는 대한민국 정부의 사악한 의지 표명을 접하면서, ‘정상가족’의 바깥에서 공동체를 꾸리며 살고 있는 혹은 가족을 구성하지 않은 비혼 여성들의 삶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이 시작되었으니까요.
‘비혼’ 모여라!
다음해(2006년) 1월, 언니네트워크 회원 워크샵 및 총회에서는 열띤 논의가 이뤄졌습니다. 바로 ‘언니네트워크 운동의 핵심 주제’를 설정하기 위해서였죠. 그 자리에서 <한국 사회의 비혼 여성 차별에 대한 저항>이 주요 운동 과제 중 하나로 설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논의를 더욱 깊이 있고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액션나우팀에서는 ‘비혼’을 화두로 2006년 8월부터 10월까지 세 차례의 감자모임을 진행하였습니다. 비혼인의 사회적 위치와 범주를 고민한 첫 번째 감자모임은 다양한 비혼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고, 후속작업으로 언니네에 ‘비혼으로 함께 잘살기 www.unninet.net/jalsalza0’ 살롱을 열어 더 많은 비혼인들과의 교류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이후 비혼 맞춤형 경제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두 번째 감자모임, 비혼 차별적 제도를 점검하고 문제의식을 고취시킨 세 번째 감자모임은 비혼 이슈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일깨우는 기회가 되었죠.
비혼, 꽃이 피었습니다.
그 깨우침을 바탕으로 언니네트워크는 ‘비혼인들의 축제‘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2007년 3월,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1회 비혼여성축제>를 통해 지금까지 ‘미혼’이란 이름에 갇혀 불완전한 존재로, 사회적 성인(成人)이 되지 못한 존재로 인식되어 온 비혼인들은 사회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비혼들만의 새로운 통과의례를 만들고, 비혼으로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서로에게 축하와 고마움의 마음을 전하고, 비혼들만의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면서 말이에요.
결혼하지 않겠다고 백번쯤 선언해도 ‘너는 언제 결혼할건데?’라는 백 한 번째 질문이 돌아오고, 친구들과 공동체를 만들어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 거라는 기막힌 포부를 밝혀도 ‘늙으면 그저 남편(아내)이 최고’라는 맥 빠지는 소리나 들어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비혼여성 운동은 이제 시작일지 모릅니다. 그러니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참으로 흥미진진하지 않나요? 거기 멋진 언니! 언니네트워크에서 비혼여성운동 함께 하지 않을래요? ^^
(별도의 제목이 없음을 안내드립니다.)
작성자: 무영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편하게 내 얘기를 하려구 합니다. 난 처음엔 공대를 다녔어요. 대학교 1학년 겨울 방학 성폭력 상담소에서 잠시 자원활동을 하게 되었고, 분노와 동일시, 착잡함 등등 수만 가지 감정들을 경험하면서 확 깼습니다. 이듬해 그때의 짧은 상담소 자원 활동 경험이 바탕이 되고 평소 여자가 살 길은 전문직밖에 없다고 외치던 내 엄마의 말씀이 양념이 되어, 결국 의대 입학 시험을 다시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왜 공대에서 의대로 옮겼냐고 누가 물으면 당당하게 이렇게 대답했죠. “여성들을 위한 병원을 만들고 싶다고!”
정작 의대에 들어와선 학교 다니기 싫어 몇 번 휴학하고 몇 번 유급했더니 한 십년이 지나가 있습디다. 10년쯤 지나고 보니 내가 옛날부터 만들고 싶어 했던 ‘여성 병원’, ‘여자들을 위한 병원’들이 여기저기 생기더군요. 시설도 짱! 서비스도 짱! 여자 의사 필수! 여성들을 위한 병원, 최고의 의료서비스로 여성 고객을 여왕으로 모시는 병원들이 줄줄이 들어서 생필품처럼 되어버린 후에야 나는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습니다. 내가 그렸던 병원이 그런 모습은 아닐지라도, 쨌든 여성병원은 여성병원이고, 그 병원들 덕에 여성들의 의료서비스 선택의 폭이 한참 넓어진 것 또한 사실이긴 하네요.
여성병원, 여성병원 노래를 불러왔으나 정작 한국에 자리잡은 여성병원들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었던 나에게 “의료생협”이라는 새로운 조직 형태를 누군가가 소개시켜 주었어요. 참 매력적으로 보였죠. 의료생활협동조합, 지역 주민들이 돈과 의지를 모아 의료시설을 직접 설립하는 것. 의료시설의 운영 방침은 조합원 총회나 대의원회의를 통해 결정되고, 시설을 설립하기 위해 조합원들이 투자한 데 따르는 이익(일종의 배당금?)은 다시 조합원들에게 돌아가거나 공공의료를 위해 쓰이게 됩니다.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쓸 지는 모두 조합원들이 결정을 하게 되고, 어떤 의료인을 고용할 것인지, 병원에 어떤 장비를 마련할 것인지도.
이거야말로 단순히 ‘여성들을 위한 병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을 위한 의료서비스’는 사실 거대 병원 자본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없어요.) ‘여성들이 만드는 병원’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점이야말로 단순한 의료서비스의 고객으로 전락해버린 (아무리 비싸게 대우받는 “고객”이라고 할지라도!!) 여성/환자들이 의료의 진짜 주체가 될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들고 싶은 조직이 여성병원에서 자연스럽게 여성주의 의료생협으로 옮아가면서, 그 조직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내 상상도 함께 변했나 봅니다. 이상하게도 내 상상이 여성병원에서부터 여성주의 의료생협으로 옮겨간 이후, 나는 별로 ‘기혼’ 여성들을 상상 속에 넣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여성병원을 만들 생각을 할 때만 해도 ‘여성들에게 호의적인 산부인과 진료, 출산 문화’ 등을 상상하기도 했었는데 말이죠.
비혼 여성 네트워크, 비혼 여성 정치세력화에 대한 얘기를 듣고 그에 대한 생각을 구체화시켜 나가면서 발견하게 된 사실은, 내가 애초에 단어를 가지지 못하여 정의할 수 없었던 ‘여성들의 병원’에서의 ‘여성’이라는 존재가, 우리 사회 정상 가족 내에 편입되어 있는 ‘기혼 여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비혼 여성’이라는 얘기를 듣고 난 이후로 새롭게 ‘아하, 내가 해왔던 (혹은 앞으로 하고자 하는) 운동이 바로 비혼 여성 운동이었구나’하고 깨달았다고 하듯이 말입니다. 나 역시 ‘아하, 바로 내가 만들고 싶었던 여성주의 의료생협이 비혼 여성들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구나’라고 느낀 것입니다.
뭔가 구체적인 얘기들은 하나도 하지 못했네요. 음… 조합원들이 각각 10만원 이상씩, 또는 매달 얼마씩 조합비를 낸다고 칩시다. 그 돈으로 병원을 마련하고 여성주의에 열의가 있는 의료인들을 고용하는 거죠. 병원은 비혼 여성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동네에 지으면 좋겠네요. 길목 어귀 어딘가에 있는 병원은 조합원들의 택배를 대신 수령해주기도 하고, 조합원들이 놀러와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놀 수 있는 카페를 자그마하게 운영하기도 하고.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1년에 한번 무료 건강검진 사업을 하구요 (초음파와 내시경 등), 여성 노동자들의 장기 농성장에 의료지원을 나갈 수도 있겠지요. 규모가 좀 더 커진다면 야간에 성폭력 위기센터를 운영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의료생협 부설 여성건강연구소 이런 것도 재밌지 않을까요? 아, 정말, 이런 상상은 직접 얼굴 마주보며 얘기해야 여러 아이디어들도 퐁퐁 솟고 그러는데, 아쉽네요. 그건 발제하시는 분이 잘 알아서 커버해주시리라 믿고.
어쨌든 비혼 여성 네트워크! 그리고 여성주의 의료생협!! 의료라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을만한 분야에서 비혼 여성들이 주체가 된다면, 자신의 몸과 건강에 대한 권리를 스스로 누릴 조직을 만들 수 있다면, 거기서부터 진짜 “자치”가 시작되는 게 아닐까욤. 난 저번 액션나우팀 회의 시간에 비혼 여성운동이야말로 가장 급진적인 여성운동의 모델인 것 같다고 주저없이 얘기한 적이 있는데요, 무엇인가 필요한 것들을 정부에, 혹은 남자들에게 해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아예 우리에게 필요한 조직들은 우리가 갖춰나가는 거, 그래서 분리주의를 주장하기 이전에 아예 실천하고 있는 거, 우리끼리 얼마든지 즐겁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거, 그런 게 비혼 여성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의료생협도, 그래서 비혼 여성들의 네트워크가 꼭 만들어갔으면 좋을 멋진 조직이라 생각하고요.
<비혼·여성, 정치의 이등시민>
작성자: 키키
해당 글은 아카이브 자료 공유 동의를 기다리는 있는 글로, 작성자의 허락을 구한 뒤 공개될 예정입니다.
혹시 언니네트워크의 연락을 받지 못하셨다면 unni@unninetwork.net 으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