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운동 하루이틀하고 말 것인가라는 의미와 비혼운동의 어제와 오늘 혹은 오늘과 내일의 의미를 가진 아카이브 꼭지 타이틀입니다. 호주제 폐지, 영페미니스트운동, 장애여성운동, 성소수자운동, 차별금지법, 가족구성권운동의 자장 안에서 등장하고 확장되고 변화해 온 비혼운동의 맥락을 ‘사람’을 통해 보여주고자 합니다.비혼원투데이는,
PLAY B 비혼의 역사를 재생하다 5편 : 비정상가족의 비범한 미래기획
타리 –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
-인터뷰 진행 : 나기, 영희
-영상 촬영/편집 : 영희
[인터뷰 전문]
네 저는 가족구성권연구소 운영위원으로 함께 하고 있는
이름은 나영정이고 활동할 때 타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2005년도, 2004년 정도부터 호주제폐지 대안 논의하는 과정에서 저한테는 가족이라는 이슈가 굉장히 중요하게 다가왔던 것 같고. 소수자 위치라는 거에 대해서 그 때 좀 제대로 알게 된 계기였던 것 같아요. 가족문제가 어떻게 보면 진보진영 안에서도 사적인 이슈? 부수적인 어떤 이슈로 그리고 여성노동자들의 이중부담 정도의 문제로 이야기가 되고 있는데, 이게 어떤 좀 근본적인 구조로서의 가족을 고민한다는 게 뭘까 이런 질문이 좀 시작이 됐던 것 같아요.
제 기억에는 그 당시에 찬란한 유언장 같은 것들을 하면서 정말 죽음을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 의료결정권을 나누지 못한다는 것의 구체적인 어떤 서사, 이런 것들을 드러내면 그거에 대해 정말 공감하겠다. 이런 생각을 정말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 때 언니네트워크의 사진소모임, ‘어떤 사진관’인 것 같은데 그 때 이런 다양한 가족들의 스토리를 모아서 사진으로 전시할 수 있는 어떤 형식을 기획을 먼저 굉장히 주도적으로 언니네트워크가 했던 것 같고. 그 이후에 이제 가족구성권 연구모임에 함께 하자고 제안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마 트랜스젠더커플이나 장애여성커플 섭외를 제가 담당을 하게 되고 제가 인터뷰나 사진촬영 같은 것들을 많이 다녔던 것 같아요. 저도 사진에 관심이 되게 많이 있어서 그 당시에.
인터뷰를 두세 번 정도 했던 것 같거든요. 정말 살아온 얘기를 쭉 듣고 지금 가족생활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쭉 들었을 때 장애여성은 법적으로 결혼한 커플이었는데 계속 가족으로 인정을 못 받아가지고 주변사람들이나 다른 가족들이나. 그래서 우리가 가족이 맞다, 내가 하고 있는 일상생활이 가족실천이 맞다는 것을 항변을 계속 해야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트랜스젠더커플 같은 경우도 그 FTM 남성분이 아직 성별변경을 안 한, 못한 상태였어요. 그래서 누가 봐도 거기는 너무 이성애커플과 시어머니를 모시는 되게 착한, 참한 파트너의 관계인건데 공식적으로 전혀 확인할 수 없는 그런 거고. 그러다보니까 우리는 트랜스젠더 커플이라서 만나게 됐는데 오히려 만나다보니까 정말 이 둘의 역동을 잘 보는 게 필요하겠다, 이런 것들을 배우는, 그런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가족구성권이라는 게 결혼권의 획득으로 시작과 끝이 아니라 정말 과정이구나, 그랬을 때 그 국면국면마다 어떤 식의 위기와 행복이 있는지를 우리는 더 자세하게 알아야하고 이게 지금 연구소에서 이야기하는 어떤 생애정상성의 서사에 도전하는 여러가지 것들이 가족구성권이라는 말로 얘기될 수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가족구성권연구소에서 결혼제도만을 문제 삼는 게 아니라 다양한 소수자들과 만나고 다양한 운동과 연대하는 이유는 사실 정상성의 문제를 다각도로 해야만 한다라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제가 가장 처음 가졌던 정체성이 비혼주의였어요. 이거는 청소년기 때,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겠고 내가 무엇인지 별로 중요하지 않은데 결혼을 하지 않을 것만은 알겠다, 그랬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문란이었거든요. 이게 보호자 없는 내 멋대로 하는 그런 이미지였던 것 같고 그래서 될 대로 되라, 될 대로 살자 이런 거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결혼을 하지 않겠다라는 게 큰거였어요. 그 여자애가 조신하게 살아야하는 이유는 흠 없이 결혼해야 되는 거잖아요. 그것이 없어졌을 때 사회주의자도 될 수 있고, 섹스를 해도 되고, 여러가지 그랬던 거 같고. 그게 저의 어떤 자아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되게 중요한 부분이었던 것 같고. 저의 되바라짐의 어떤 큰 방향을 결정하는 것 아니었을까 싶구요. 그래서 저는 그게 제가 성소수자로서의 삶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방식, 혹은 돈을 벌지 않고 사회운동을 선택할 수 있었던 여러가지 어떤 뿌리 같은. 이 가족제도 국가제도라는 게 개인을 억압할 수 있다라고 사실 생각할 수 있는 출발점이었기 때문에 저한테는 되게 중요한,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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