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고 미루던 커밍아웃을 ㅁㅁ에게 했을 때, 그녀의 첫 질문은 이것이었다.
“섹스는 어떻게 해요?”
아. 어쩌면 좋을까. ㅁㅁ의 섹스라이프에 페니스에 의한 삽입 이외에 수많은 가능성이 누락되어 있다는 안타까움과 함께 ‘성.소수자'(feat.김서형)라는 고백에 바로 뒤따라나오는 게 섹스에 대한 질문이라니 여전히 ‘성적인 존재’이기만 한가 하는 놀라움을 동시에 느꼈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말문이 막히는 기분 가운데 가장 내 마음을 난도질한 것은 이것이었다. 지금! 바이섹슈얼로 살면서 내 인생에 가장 섹스가 부족한 이 순간에! 이성애자가 상상하지 못하는 레즈비언 섹스에 대해 설명해야하다니 정.말. 말하고 싶지 않다!
상대적으로 상시적이고 높은 상대방의 성적 욕구에 대해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존중받을 수 있기를 협상해왔던 이성연애의 관계와 다르게 상대의 미묘한 꺼리낌에도 조금이라도 상대적으로 ‘하고 싶지 않은 쪽’의 의사를 따르는 것이 윤리라고 생각하고 그만두는 퀴어+페미니스트 파트너십에서 섹스는 매우 가파르게 증발되었다. 섹스가 단순히 ‘욕구’이기만 하다면 질 좋은 토이와 함께 스스로의 욕불을 해소하는 과정으로 충분하겠지만, 섹스와 스킨십에 얽혀있는 수많은 다른 감정들이 또다른 질문을 불러왔다. 나는 매력이 없는 것일까? 나의 성별표현이 모호한 것이 문제일까? 상대방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애초에 욕구 자체가 별로 없는 사람이었던 걸까, 그렇다면 이 파트너십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헤어질 생각이 없다면 다자적 섹스 파트너 관계를 개척해야 하는 것일까? 그럴 사람을 구할 수나 있을 것인가? 나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가, 정말 원하는 사람인가? 등등등
장기 파트너십을 유지한 이성애자 법적 부부와 레즈비언 커플에게 문제를 상담했지만 놀랍게도 이성애자 비이성애자를 막론하고 나에게 모두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다”라는 웃음섞인 대답을 들려줬다. OMG.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섹스는 토이로 채우고 사랑은 애인에게 몰빵하지 않는 애정의 네트워크로 채우고 살아가는 것이 이 파트너십의 (혹은 다른 퀴어 페미니스트를 만나도 또 맞닥뜨릴) ‘윤리’이자 ‘운명’이라니!
많은 사람들이 연애관계, 파트너십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나 차이의 발견에 대해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서로 소통하라-고 이야기하지만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섹스나 스킨십이 연애 및 파트너십 시나리오에서 강력하게 ‘사랑’과 연동되어 있는 행위로 해석되는 상황에서 ‘솔직’해지는 것은 단순히 이유나 해결방안을 찾기위한 대화가 아니라 ‘내가 널 더 원한다’는 사랑을 구(걸)하는 요청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솔직’은 매우 어려워진다.
<사랑과 전쟁>은 여기서 시작한다. 파트너에게 솔직할 수 없을 때, 연애나 파트너십의 문제는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해결해야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혹은 이 좁디좁은 퀴어사회에서 나도 상대방도 ‘나쁜 사람’이 되어서 관계에서 배척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해서 혼자 참아야만 하나 고민할 때 함께 하기 위해서다.
-섹스&스킨십의 빈도는 애정의 정도와 비례한다?
-내가 원하는 섹스의 빈도는?
-파트너가 원하더라도 나는 절대 하지 않았으면 하는 성행위&스킨십은 무엇인가?
-내가 로맨틱/섹슈열하다고 느끼는 요소(장소, 행위, 분위기, 기타 등등)는 무엇인가?
챕터1_섹스&스킨십에서 던져진 질문에 대해 답하면서 참여자들은 비슷한 갈등 상황에 대한 서로 다른 각자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 자신을 경험으로부터 조금 거리두고 바라보고 새롭게 해석했다. 섹스가 관계유지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하는지 아닌지에 따라, 사랑의 표현인지 자신의 성적 매력을 확인하는 것인지 파트너십 외의 관계와 나누기 어려운 유대감을 나누는 것인지 정의에 따라 파트너와 ‘해결’해야할 포인트가 달라진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나눴다.
페미니스트로서 동의의 ‘윤리’가 우리의 성적 활력이나 애정을 제거하지 않도록 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도 아이디어를 나누고 섹스와 스킨십의 문제가 ‘사랑’의 문제로만 해석되지 않는 다양한 변수가 개입되는 문제라는 것에 대해서도 나눴다. 섹스를 할 때 셀프이미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고, 체력의 차이의 문제이거나 가사분담의 불균등함에서 오는 보상적 심리, 육체적 만족감이 충족되지 못하더라도 정서적 돌봄이 충분히 주어졌는가 등등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
결국에는 욕구의 차이가 해결되지 않고 남을 때 우리는 파트너십에서 그 ‘차이’를 어떻게 다루며 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 완벽한 답은 없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질문하고, 같이 답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하다보면- 새로운 결론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질문을 남기며 ‘-‘ <사랑과 전쟁> 챕터1의 후기는 여기까지인 것으로!
가사분담과 정서적돌봄의 균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다음 모임도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