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작성 : 나기
7월의 마지막 토요일 <사랑과전쟁 : 파트너와의거리>가 오랜만에 대면모임으로 열렸습니다. 이번 모임은 기획단원 중 한 명의 조심스러운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너네는 서로 ‘어디까지’ 이야기해?” 이 막연한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 기획단원들은 각자 파트너 관계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 이야기를 요청받는 것이 어떤 내용인지를 공유하면서 프로그램을 구체화해보았습니다.
첫번째로는 이야기를 넘어서서 파트너와 의존하고 싶은 다양한 영역의 욕구에 대해서 탐색해보았습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나 내 영역을 보장받고 싶은 마음 그 둘 중 어느 것도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다만 내가 혹은 상대방이 어떤 영역에서 얼마나 의존하고 싶은지, 독립적이고 싶은지를 모르면 이것이 협상가능한 것인지 판단해보기 전에 상대방의 행동을 나에게 너무 부담을 주는 행동으로 해석하거나 또 반대로 나에게 너무 무신경한, 애정이 없는 태도로 단정지을 위험이 있습니다. 사랑과전쟁은 <섹스와 스킨십>, <가사노동과 정서적 돌봄>에서와 마찬가지로 <거리감>의 영역에서도 행동과 애정을 나눠서 볼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합니다.
참가자들은 파트너와의 거리를 여러 영역으로 나누어 (경제적 거리 : 버는 것과 쓰는 것, 미래계획와 커리어 등 / 정서적 거리 : 부정적 감정의 해소, 희노애락의 공유 / 생활적 거리 : 가사에 대한 공동책임, 옷 등 물건 공유 / 공간적 거리 : 물리적 공간의 분리, 함께 있는 시간을 보내는 공간, 신체적 접촉 / 시간적 거리 : 주말, 여가의 공유, ‘비는’ 시간에 대한 소유욕) “당신이 원하는 적절한 거리는 어느 정도인가요?”라는 질문에 답해보았습니다.
정중앙을 나 자신으로 두고 의존하고 싶은 마음이 크면 클 수록 각 꼭지점에 가까워지도록 표시하여 참가자들이 어떤 영역을 파트너십에 중요한 구성요소로 생각하는지와 어느 정도로 의존하고 어느 정도로 독립적인 것이 나에게 중요한지 체크해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파트너뿐 아니라 친밀한 타인과도 거리를 생각해보고 둘의 차이가 있는지도 알아보았습니다.
정서적 상호의존이 매우 중요하다고 이야기한 참가자, 공간적/시간적으로는 절대적인 내 공간, 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 참가자, 내 가용 예산 중 얼마까지 친밀한 타인 또는 파트너에게 빌려줄 수 있는지 이야기한 참가자 등 매우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서로 다른 모양의 도형을 보고 설명을 들으면서 이토록 관계가 다를 수 있구나하는 지점과 관계에서 내 욕구가 이것이었구나 하는 지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로는 이야기의 주제를 탐색해보았습니다. 이야기하고 싶은데 못하는 / 하고 싶지 않은데 계속 해야하는 / 듣고 싶은데 못듣는 / 안듣고 싶은데 계속 듣는의 영역으로 나누어 어떤 주제의 이야기가 각 영역에 해당되는지를 써보았습니다.
언제 일어났고 뭐 먹었고 어디 가고 있고 하는 일상적 이야기를 왜 공유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과 인생의 중요한 가치관, 현재 일어나고 있는 변화, 서로의 감정을 나누고 싶은데 그것이 되지 않아 힘들다고 하는 사람 등 참가자들끼리 서로 “그게 중요하다고??”라고 놀라는 지점도 있었지만 바로 그게 공통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상대방에게 중요한 대화의 내용을 알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도 못하게 되는 이유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상대를 알고 싶어서 건네는 질문이 나라는 사람의 대답과 행동을 통제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고 내가 스스로 뭘 원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는데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다그치는 느낌이 들어 더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내가 상대의 질문에 취약해질 때를 알기 때문에 더더욱 상대를 몰아세우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페미니스트라서- 내 질문에 상대방이 행동을 바꾸는 것이 강요라고 느껴져서, 우리의 대화는 자기검열과 가스라이팅 검열 사이에서 길을 잃었던 듯 했습니다. 파트너를 감정적 배출구로 사용하거나 내 취약함을 다 감싸안아줄 쿠션으로 생각하면 안되겠죠. 파트너 한 사람이 내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욕구를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풀고 파트너에게 요청하는 부분을 점점 줄여나가다보면 물어야할 질문도 삼키고 듣고 싶은 말도 요청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기도 합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우리가’ 대화가 어려웠던 부분이 ‘나의’ 어떤 마음과 연결되어 있었는지 알아본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나의 통제감, 나의 쿨함, 나의 애매모호함, 나의 체념, 나의 슬픔… 나와 상대 모두 스스로의 그 마음을 알아채는 것이 대화의 힘을 키우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은 세번째 모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