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작성 : 나기
수많은 페미니스트 동거공동체의 파탄의 역사를 구전으로 듣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가부장제보다 내 마음을 더 할퀴는 여성연대… 답도 없는 페미니스트 개싸움… 우리가 ‘원가족’ 같은 관계는 아니라는 믿음과 기대는 때로 서로의 차이를 만나 더 극적으로 배신감과 갈등을 증폭시킨다.
아버지한테는 너, 니 거리며 입에 거품물고 밥상을 엎어봤는데 가부장권력을 무화하려는 너, 니가 여자친구들과의 사이에서는 내 나이권력을 휘두르는 일이 된다. 부지불식간에 튀어나간 너, 니를 수납하고 혹시 내 행동이 상대방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통제적 행위이거나 폭력적인 행동이 될까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은 수도 없다. 하지만 참다참다 보면 ‘아 이거 지금 내가 통제당하고 있는 건가?’하는 두려움과 억울함이 왔다갔다 한다.
상대방이 내 주거나 경제권을 쥐고 나를 흔드는 것도 아니고 우리 사이에 뚜렷한 체격 차이나 힘의 차이도 없고, 나이도 고만고만하고… 젠더역학이 희미해진 관계에서도 여전히 갈등이 일어난다면 이건 정말 인성문제밖에 안남아 관계는 ‘너’라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으로 굴러떨어지기 쉽상이다. 갈등이 ‘너’나 ‘나’라는 인간의 본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답 없는 골짜기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11월 12일, 올해 마지막으로 열린 사랑과전쟁 모임은 <갈등을 대하는 너/나의 태도>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1회차, 2회차, 3회차 신청자였던 분들이 다시 신청해 역대 최고 인원으로 진행된 이번 모임은 갈등의 주제보다도 반복되는 태도가 갈등이 되는 상황에 대해 다뤘다. 어떤 주제든 사실 풀어나가려면 대화가 필요한데, 이 대화를 하는 방식에서부터 차이를 인지하지 않으면 시작이 어렵다.
우리는 먼저 각자가 갈등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가장 즉각적으로 느끼는 감정을 공유했다. 화가 나는 사람, 슬퍼지는 사람, 마음이 공허해지는 사람, 멍해지는 사람 등 내가 갈등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이 ‘당연한’ 것은 아니구나-하는 부분에서 먼저 출발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 파트너가 나에게 보이는 감정이나 태도가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비슷한 사람이 많구나-하는 부분도 나눴다.
다음으로는 갈등상황에서 내가 주되게 취하는 행동을 나눴다. 크게 ‘지금 당장 문제점을 풀어나가는 대화를 하지 않으면 화가 나는’ 그룹과 ‘상황과 감정에 대한 스스로의 인지나 언어가 즉각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아 즉각 답을 요청받을 수록 더욱더 멍해지는’ 그룹의 자기PR로 진행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적어도 5인 이상의 그룹에서 진행하기를 권한다. 대화의 열기가 너무 뜨거워서 사진찍는 것도 까먹었으니 양해 바람)
갈등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내가 주로 취하는 행동은 어떤 방식인가요?
1) 곧바로 상대와 대화를 요청한다 (마무리될 때까지)
2) 자리를 피하고 혼자 정리할 시간을 가진 후 돌아온다
3) 친구를 만나러 가서 이야기를 나눈다
4) 잠수를 탄다
5) 상대에게 화를 낸다
6) 운다
7) 참는다
8) 기타
원가족과의 관계에서 내 감정에 대한 이해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거나 거절당했는지가 지금의 내 행동과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 있는지도 나누고, 회피형이라고 생각한 사람보다 적극적으로 대화를 요청한 사람이 자기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기 어려워하는 사람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함께 나눴다.
섹스와 스킨십, 가사노동과 정서적돌봄, 파트너와 나의 거리. 사랑과전쟁에서 진행했던 모든 주제는 <갈등을 대하는 너/나의 태도>와 깊게 연관되어 있었다. 어떤 주제든 갈등의 원인을 ‘너’로 돌리거나 서로의 잘못배틀을 하지 않는 좋은 대화가 필요한 법이다.
2022년의 사랑과 전쟁은 마무리하지만 2023년에도 또 흥미로운 프로그램으로 돌아올 사랑과전쟁을 기다려주시길! 마지막으로는 기획팀에서 정리한 페미니스트 파이트에서 고려할 점을 공유한다!
갈등을 대할 때 고려할 점
1. 체력
– 최근 일이 많아서 쉬지 못했는지, 생리 중인지, 잠을 제대로 못잤는지 등 마음은 생각보다 몸의 힘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나와 상대 모두, 체력적으로 괜찮은 상태인지 지금의 감정을 몸의 힘듦이 강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자
2. ‘사과’하는 방법에 대한 서로의 차이
–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했을 때만 ‘미안하다’는 말을 쓰는 사람, 100% 잘못했을 때만 미안하다고 하면 대체로 사과를 잘 안하는 사람이 되고 말이라도 ‘미안하다’고 말해줘야 마음이 풀리는 사람은 상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발하는 사람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게 중요한지, 말은 없어도 다정한 행동을 되돌려주는 게 중요한지, 잘못했다고 서로가 인정한 행동이 다시 반복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한지 등 ‘사과’에 대한 차이를 알아보자
3. 갈등의 ‘해결’ 지점에 대한 차이
– 나는 문제에 대해 한 번 대화를 나누고 서로 인정하고 사과했으면 끝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상대방은 ‘마음’이 상한 것이 덜 풀렸으므로 마음이 풀릴 때까지, 또는 행동이 진짜 변화가 있을 때에 갈등이 해결된 것이라고 생각할 때 갈등의 불씨가 사그라들지 않을 수 있다.
– “힘들면 얘기하겠지, 싫으면 얘기하겠지”라고 상대의 마음의 힘을 믿는 것이 상대를 무시하는 일이 되기도 할 때를 주의하자.
4. 가스라이팅의 경계
– 갈등의 원인이 나라고 생각하면 자존감 떨어지고, 상대방 탓이라고 이야기하려고 하면 상대의 행동을 통제하려고 하는 사람이 된 것 같고 균형이 어디인지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5. 약자의 말하기 방식
– 서로가 자신의 피해를 가지고 경쟁하게 되면서 대화가 엉망이 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니가 이렇게 하는 거 폭력이다, 니가 이렇게 하는 거 나한테 억압적이다”라는 말하기가 진짜 그렇게 느껴서일 때도 있지만 ‘폭력’이라고 말하는 순간 예민하게 받아질 것을 알고 무기화하는 측면도 있을 수 있다. 파트너십에서 이것을 ‘스스로’ 경계할 수 있을까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