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꼴 코너는 매달 꼴키퍼들이 계절에 맞는 문화 컨텐츠를 소개하는 책방꼴의 연재글입니다.
by 나기
책방꼴의 책장 위편에는 재고도서를 넣어둔 정리박스가 있다. 전면이 뚫려 있기 때문에 뭐가 재고 도서인지 다 볼 수 있는데 가장 왼편에 가득 있는 것이 미야베 미유키의 추리소설들이다. 다음 달이면 책방꼴은 오픈한 지 6주년이고 그 소설은 6년간 당당하게 살아남아 있다.
처음 서점을 오픈했을 때 우리(책방꼴준비위원회)는 ‘그래, 퀴어 페미니스트 책방에는 새로운 문학 정전이 필요해!’라고 생각했다. 순수문학도 많이 검토했지만 그것은 차분하고 이성적인 검토였다면 장르문학을 들여놓는데에는 침이 튀고 목소리가 높아지는 열전이 있었다. “SF는 지금-여기가 아닌 저 너머를 다룬다. 그렇게 우리에게 낯선 것을 들이대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전제를 재고하게 만든다.”(퀴어페미니스트매거진 펢 제5호, <페미니즘 SF의 세상에서 바뀌는 것들>)고 심완선은 말했다. SF만이 아니라 장르문학에는 그런 성질이 있는 것 같다. 낯선 것을 들이미는 힘이 책방꼴에도 있기를 바랐다. 입고목록을 검토하면서 우리는 눈이 벌게져서 각자가 좋아하는 여성/소수자인 작가가 쓴 SF소설과 추리소설을 대거 추천했다. 신간도 아니고 중고도서서점에서도 물량 과다로 안받아줄 정도로 이미 많이 팔린 도서임에도 적극적으로 입고를 한 데에는 그런 배경이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대거 들여놓게 된 것에는 나의 책임이 크다… (손해를 끼친만큼 책방꼴에서 책을 많이 사간 것으로 나의 결정에 대한 영향은 메꾸고도 남았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추리소설이 사건의 범인이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트릭을 밝히고 범인이 ‘누구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미야베 미유키의 추리소설은 사건의 범인 또는 가해자가 누구인지는 처음부터 드러나지만 그 사람이 정말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나에게는 없거나 익숙하지 않은, 마주하기 힘든 ‘낯선 욕망’을 추적하는 여정이다. <모방범>, <낙원>, <화차>는 특히 그렇다. 재고를 팔아넘기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그렇다.
우리는 상대방과 맺고 있는 관계, 그 관계가 맺어진 장소, 상황, 조건 속에서 사람을 파악하고 그 안에서 어떤 알맹이를 발견하고 있다고 여긴다. 부분 속에서 진실을 발견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다른 관계, 상황 혹은 과거 속의 그 사람이 다를 수 있다는 것, 내가 아는 사실과 그 사실이 통합되었을 때 그가 ‘누구인지’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다. 대부분의 생활에서 우리는 모르는 것은 모르게 둔다. 내가 함께 일하는 동료가 퀴어퍼레이드 트럭에서 크롭티 입고 춤을 흔들어제꼈던 나를 모르듯이. 여성/소수자의 ‘착하지 않은’ 욕망은 더더욱 탐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 집요하게 쫓는 그 힘은 이런 추리소설에서나 볼 수 있다. 형사가 범인의 초상을 구성해가듯이 누군가 나를 집요하게 파악하려고 한다고 하면 그것 역시도 현실 속에서는 무서운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이 집요함에 매료되는 것은 낙인찍힌 욕망도 드러내고 싶다는 욕망이나 여러 사회적 관계에 흩뿌려놓은 조각난 자아를 통합하고 싶다는 욕구때문이 아닐까.
아무튼, 미야베 미유키 책이 팔리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