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재산과 가주로서의 지위가 부계혈통을 중심으로 승계되는 가부장적 절차로서 이어져온 장례는 소수자에게 자신의 삶과 관계를 이름없는 것으로 만드는 차별을 계속해서 만들어냅니다. 언니네트워크는 2023년 가부장제로부터 우리의 죽음을 지키는 법 – [탈가부장:례식] 사업을 통해 성평등과 가족구성권의 관점에서 죽음과 애도의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차별을 가시화하고 이에 대응하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언니네트워크x가족구성권연구소x사회복지연구소물결이 공동주최하는 연속워크샵 [죽음 또한, 평등해야하니까]는 ‘나’의 장례식, ‘너’의 장례식을 먼저 맞닥뜨리는 ‘우리’를 위한 시간입니다.
*각 행사제목을 클릭하면 각 행사마다의 후기를 읽어보실 수 있어요!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일상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음이 내 인생을 구성하는 하나의 조각임을 애써 외면하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나’ 그리고 ‘우리’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고 살아가다 보니 장례 절차와 추모, 애도의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차별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고 또 차별에 대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도 남의 이야기만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우리의 장례식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생전에 전혀 예상치 못한 차별의 과정이 생기고는 합니다.
[기사보기] “딸은 상주 못 하나요?”…여전한 의례문화 성차별 (출처 : SBS 뉴스)
6월 24일 진행된 [죽음 또한, 평등해야하니까] 세번째 워크샵 <내가 쓰는 장례 시나리오 : 나가거든>에서는 ‘죽음’의 상황에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차별의 상황을 제시하여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차별을 인지하고, 대응 시나리오를 작성하여 차별의 상황에 대비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나’ 그리고 ‘우리’의 죽음을 가정하여 ‘지인의 무연고 장례’, ‘비혼 노년의 죽음’, ‘합리적인 장례비용’, ‘나다운 장례식’, ‘내 파트너의 장례식’ 다섯가지 사례를 제시하였고, 참가자들은 제시된 사례 중 한가지 주제를 선택하여 각자의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고, 대응 방법 등을 작성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가자들에게 제시된 다섯가지 사례는 나와 지인, 파트너 등의 죽음을 마주하였을 때, 실제로 발생할 수 있는 차별적 상황과 진행의 곤란점 등에 대한 내용을 담아 상황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고자 했습니다.
- 지인의 무연고 장례
오랜 인연으로 관계를 이어온 나의 친구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내 친구는 현재 파트너도, 자녀도, 부모도 없는 상태이다. 친구의 유일한 친족은 연을 끊은지 20년이 훌쩍 넘은 남동생 하나이다. 하지만 남동생은 경제적 여유가 없어 무연고 처리를 원한다고 전해왔다. 친구와 오랜 기간 알고 지내며 공통으로 친하게 지냈던 지인들과 함께 장례를 치르고 싶지만, 나 또한 경제적 여유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 이다.
- 비혼 노년의 죽음
비혼으로 살아온 나는 어느덧 80대 노인이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주변 지인의 부고를 더 자주 전달받으며, 나의 죽음 또한 갑작스럽게 찾아올 수 있을 거라 예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해왔다. 하지만 이미 노인이 된 나의 주변에는 내 장례를 주관할 수 있는 지인(가족, 친구 등) 대부분이 사망하거나, 노화하여 나의 장례식 주관을 부탁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다행히 최근들어 관계망이 대폭 축소된 삶을 살아온 비혼 노년층의 사망이 증가하여 장례 절차를 진행해 줄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어느정도 구축되어 있다고 한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 나의 장례를 진행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어 나는 나의 사후, 나의 장례식을 위해 내가 원하는 바들을 미리 작성해두려 한다.
- 합리적인 장례 비용
최근 들어 주변에 부고가 많아 장례식을 많이 다녀왔다. 여기저기 장례식을 다녀보니 너무나 사업화가 된 우리나라의 병원 중심 장례문화에 의문이 든다. 내가 죽고 나면 내가 느끼지 못하고, 결국 필요와 의미가 없어질 것들(수의, 빈소 사용료, 접대비, 제단 장식, 조화 등)에 쓸데없이 너무 많은 돈이 사용 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고,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나도 나의 죽음, 나의 장례식을 위한 비용을 미리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 비용이 이왕이면 내가 원하는, 내가 생각하는 합리적인 방향으로 사용되었으면 좋겠다.
- 나다운 장례식
나는 20대 중반에 이성애결혼을 하고 자녀도 한명 둔 50대 여성이다. 나는 40대에 페미니즘을 접하고 공부하며 이성애주의와 가부장제 위계를 비판하고 거리를 두고자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아마 내가 죽게 되면 나의 장례식은 남편 주도하에,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전형적이고 상품화된 가부장적 장례식이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더 나다운, 내가 원하는 장례식을 치르고 싶다.
- 내 파트너의 장례식
퀴어 파트너십을 20년 간 이어온 파트너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파트너는 생전에 자신과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찾아온 모든 이들이 슬퍼하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며, 자신을 추억하고 서로를 위안하기 위해 자신을 위한 퀴어 합창단 공연을 꼭 해달라며 나에게 부탁을 해왔다. (곡도 딱 정해주었다. 사위도 며느리도 아닌 애매한 역할에 대해 노래한 곡: 사느리 타령을 안무와 함께 불러달라며 부탁을 남겼다.) 하지만 파트너의 원 가족은 파트너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아왔고, 공연은커녕 나를 포함한 모든 퀴어 지인들의 장례식 참여를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죽음의 상황에까지도 발생할 수 있는 차별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던 참가자들이 많았지만, 분명 주변에 있을 법한 상황에 열띤(진행자가 멈출 수 없을 정도로…!)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오분만 더!” 개미지옥을 겨우 빠져 나와 각 주제 별로 참가자들간 나눈 대화를 요약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각자의 경험과 상황이 워낙 다르다 보니 미처 생각치 못했던 문제점을 느끼기도 하고, 해결점을 깨닫기도 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많은 의견이 오갔고, 그 중 많은 참가자들이 공감한 인상 깊은 내용 두 가지를 소개합니다.
첫째, 관계의 보호가 필요합니다. 현재 장사법상 ‘나’의 장례식을 치러줄 수 있는, 치러주기를 희망하는 관계의 누군가도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면 장례 절차를 진행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 나의 관계를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의하고 보호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나의 죽음을 1차적으로 돌보게 될 원가족과의 라포가 충분히 형성되어 나의 희망사항대로 차별적, 비 합리적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방법도 있으나, 원가족과의 관계 자체가 나의 희망에 존재하지 않는 경우 내가 원하는 관계의 지인이 나의 죽음을 돌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장례 절차 등 사후 희망사항의 꾸준한 정리가 필요합니다. ‘내가 죽으면~’을 가정하여 정기적으로 유언장과 나의 삶을 정리하고, 유언 등을 집행 할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다운 장례식’에 대한 각자의 희망에 대한 의견은 정말 너무나 다양했습니다. 진정으로 고인이 원하고, 또 남은 자들이 충분히 애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장례 절차가 진행될 수 있도록 꾸준히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하고, 지인들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가자들의 ‘장례식 버킷리스트’를 듣다보니 우리 모두 죽기 위해 사는 것 같다는 우스운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의견 나눔 시간 뒤에는 지난 1차 워크샵 <장례지도사가 알려주는 장례절차 A to Z> 이후 정리한 ‘차별 없는 장례 준비 체크리스트’를 공유하여 워크샵 후에도 장례 절차에 대한 생각을 연장해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마치 진시황제처럼 영원한 생을 꿈꾸며 나의 사후에 대한 생각을 미루고만 싶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과 죽음에 대해, 사후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 보면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이 확실해 집니다. 심지어 죽음의 절차에는 내가 인지조차 못하는 차별의 상황들이 놓여있기도 합니다.
이날 워크숍을 통해 불멸 환상을 깨고, 우리 모두가 잘 죽을 수 있도록 살아가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친언니의 ‘언니다운’ 장례식을 치른 가수 이랑님의 이야기를 담은 기사를 공유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다음에 또 많은 분들과 생각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주말엔] “언니가 좋아할 장례를 치르고 싶었어요” … 친언니 장례식에서 춤을 춘 사연 (출처 : KBS 뉴스)
by 밀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