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재산과 가주로서의 지위가 부계혈통을 중심으로 승계되는 가부장적 절차로서 이어져온 장례는 소수자에게 자신의 삶과 관계를 이름없는 것으로 만드는 차별을 계속해서 만들어냅니다. 언니네트워크는 2023년 가부장제로부터 우리의 죽음을 지키는 법 – [탈가부장:례식] 사업을 통해 성평등과 가족구성권의 관점에서 죽음과 애도의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차별을 가시화하고 이에 대응하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언니네트워크x가족구성권연구소x사회복지연구소물결이 공동주최하는 연속워크샵 [죽음 또한, 평등해야하니까]는 ‘나’의 장례식, ‘너’의 장례식을 먼저 맞닥뜨리는 ‘우리’를 위한 시간입니다.
- 장례지도사가 알려주는 장례절차 A to Z
- 장:례플릭스 – 내 장례식 영화로 미리보기
- 내가 쓰는 장례 시나리오 : 나가거든
- 무명의 죽음에서 이름있는 삶으로
* 각 행사제목을 클릭하면 각 행사마다의 후기를 읽어보실 수 있어요!
6월 30일 워크샵 마지막 회차 <무명의 죽음에서 이름있는 삶으로> 가 열렸습니다. 이번 워크샵은 가족구성권연구소가 올해 1월 내놓은 <가족질서 밖 소수자의 장례와 애도를 위한 사례보고서 : 퀴어의 삶과 죽음을 둘러싼 관계성을 중심으로> 보고서를 함께 살펴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보고서 보러가기
이날의 워크샵은 보고서의 내용을 발제를 통해 듣고,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보는 형식으로 모둠별로 진행되었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오갔고, 이날의 분위기가 어땠는지는 <탈가부장:례식> 기획단으로 참여한 양양 님의 진솔한 후기로 전해드립니다. 🙂
언니네트워크에서 진행하는 <탈가부장:례식> 기획단에 참여하기로 했을 때 나의 처음 마음가짐은 그저 가볍기만 했다. 직관적인 프로그램 이름처럼 우리나라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하다하다 ‘죽음’의 문턱까지 따라와 꿋꿋하게 제 몫을 해내는 ‘가부장제’를 통쾌하게 뽑아버릴 수 있길 바라는 가벼운 마음, 그뿐이었다.
나의 이런 가벼운 마음은 연속워크샵 준비를 위한 회의를 거듭하면서 안타까움, 슬픔, 애도, 끝내 분노까지 더한 다양한 감정의 무게가 실어졌다.
기획단 회의 중 가장 잊을 수 없던 시간은 가족구성권연구소의 <가족질서 밖 소수자의 장례와 애도를 위한 사례보고서>를 함께 읽었던 시간이었다.
보고서를 읽기 전까지 내가 바라던 건 그저 모든 사람들이 ‘나다운 장례식’을 치룰 수 있는 세상이었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지금도 충분히 가능한 세상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었다. 보고서를 한 줄 한 줄 읽어내려가며 내가 정말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었단걸 깨달았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소수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형식적이고 행정적인 절차들 앞에서 애도할 권리와 애도 받을 권리를 침범받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보고서와 연계 되었던 4회차 <무명의 죽음에서 이름 있는 삶으로> 워크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가 사랑하는 친구, 동료, 배우자를 잃은 슬픔도 슬픔이지만 그 슬픔을 위로받지 못하는 슬픔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국 사회의 혈연 중심, 법적 가족 안에서 삶을 유지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단 하나의 정답인 듯한 주입식 생애 각본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워크샵 참가자분들 중 한 분의 사례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 마음이 아린다.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던 참가자분은 성인이 되고 자신을 그토록 힘들게 했던 가족과의 연을 끊었다. 그리고 지금의 파트너를 만나 서로에게 큰 위안과 사랑을 주는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만약 자신에게 죽음이 찾아올 경우, 지금 당장 나의 옆에 있는 파트너가 아닌 지독히도 끊고 싶었던 ‘혈연 가족’에게 죽음의 권리가 쥐어진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으셨다. 나 또한 충격이었다. 법적 가족에게 일차적인 권리와 책임을 부여하는 가족주의적 장사법과 사회복지 시스템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유독 소수자들을 어떤 권리도 가져서는 안되는 순수한 존재로 규정하는 것 같다. 순수한 애도만이 강요되는 자리는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박탈되는 것을 정당화 한다. 재산과 관련된 단순한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온 흔적을 지우고 삶의 자리를 빼앗는 더 큰 차원의 문제이다. 이러한 ‘순수함’의 강요가 소수자들이 사회에서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를 빼앗고 ‘무명’의 자리로 소수자를 내몰고 있는 것이다.
나는 늘 내 장례식이 축제가 되기를 바라왔다.
네 번의 워크샵을 참여하면서 죽음이 내 삶의 마지막 축제가 되려면 ‘죽음’을 터부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혈연가족을 넘어서 내 삶에서 뗄 수 없는 사람들-내가 의지하고 함께 살아왔던 친구, 동반자, 단체에게 내 삶의 마지막을 동행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것 또한 정말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인간의 마지막 복지는 장례라고 생각한다.
당사자가 원하는 장례 문화가 잘 자리 잡히고 당연한 권리가 당연하게 보장 되어야만 진정한 ‘나다운 죽음’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고 그제서야 우리가 사는 이 나라를 진정한 ‘복지 국가’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by 양양
설문지를 통해 받은 참여자들의 목소리도 함께 살펴보아요.
“장사법에서 ‘연고자’가 순서대로 지정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장례 관련 법을 좀 더 알고 싶어요.”
“다른 유형의 소수자들(이주민, 장애인, 난민 등)이 겪는 장례 문제를 좀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다음에는 소수자와 가난한 자를 위한 ‘장례 복지 정책’을 제안하는 행사를 하면 좋겠어요.”
“전시회 정말 기대돼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마지막 참여자의 말씀처럼 전시회도 열심히 준비 중이니까 전시회(10월 예정!)에서 다시 만나요!